듣기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한참 모지리다. 듣는 것 보다는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내게 들어오는 모든 감각들을 어떤 식으로든 풀어내야 쾌감을 느끼고 비워진다. 이런 내가 듣기 능력을 향상하게 된 것은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음악치료사는 끊임없이 내담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 뿐만 아니라 말에 숨어있는 의미, 몸의 말, 눈빛, 이 공간의 분위기를 점검하고 복기하고 해석한다. 내담자와의 첫만남때는 잘 되지 않는다. 그가 사투리를 심하게 쓸 때도 있고, 이가 빠져 못알아들을 때도 있고, 말 끝을 흐릴 때도 있다. 그럼 재차 묻곤 하는데 같이 생활하는 옆 내담자들은 그 말을 다 알아듣는지 “그 말이 아니라 이 말”이라 알려줄 때도 있다. “아! 이 말이군요!”라고 제대로 알아들으면 그제야 웃음꽃이 핀다. 회기가 서너회 지날 수록 나는 잘 알아듣고 잘 듣게 된다.
코로나때 꽤 힘들었다.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더 잘 안들렸으며 내 말도 그들에게 안 들렸다. 여러번 말해야 했고, 크게 말해야했고, 크게 노래해야 했다. 그래서 눈을 더 보게 되고 눈으로 말하고 듣는 능력은 더 향상된 듯.
이렇게 밖에서는 초인적인 힘으로 듣기의 달인이 되어가는 반면, 집에서는 ‘듣기’가 어려웠다. 어렵다기 보다는 듣기가 싫었을 수도. 엄마는 무슨 얘기를 할 때마다 꽁트 하듯 “이 사람이 글쎄 야!너 어쩌고, 그랬더니 내가 야!그런데…” 하며 대화상대자 연기를 펼치는데 하나 듣는데만 30분…. 답답해서 도저히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대화 주제가 너무나도 안 맞았는데 특히 정치얘기가 나를 미치게 했다. 어디서 자꾸 이상한 가짜뉴스를 보고 말하는데 꼭 마지막에 나의 동조를 구하는 눈빛을 보낸다. 처음에는 반박하며 으르렁거렸으나 이제는 그냥 다 포기. 부모 말을 이리도 듣기 싫어하는 나는 너무나 나쁜 딸래미.
이 분야 가장 정점은 나으 짝꿍이. 투머치토커. 집에 문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자기 직전까지 내 뒤통수에 대고 말한다. 설겆이할 때도, 세수할 때도, 재방송 3방송 한다. 어제는 너무 과하다, 귀가 터질것 같다고 하자 투머치토커로 책을 쓰란다. 이미 썼자나….당신이 안 읽어서 그렇지. 애를 낳으면 좀 줄려나 했는데 둘이 스테레오로 말하고 서로 말하겠다고 울고불고.
그래도 아이가 말하는 건 너무 귀여워 죽음이다. 말을 어떻게 고 쪼끄만 입으로 올망졸망 잘 하는지. 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안 들어 줄 수가 없지. 물론 내가 컨디션 좋을 때의 일이다. 엄마!엄마! 수없이 찾아대는 그 이름, 엄마. 그건 바로 나. 엄마를 도대체 몇 번 부르냐니까 하는 대답이 “한 천번쯤?”
그러고보면 나의 듣기능력은 굉장히 편협하다. 듣기를 잘 해야 내면이 성장한다는데 때와 장소와 사람을 이렇게도 가리다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기란 더욱 어렵다. 때론 나와 상대를 동일시하게 되면서 생각이 다른 걸 못견딜 때도 있고, 차곡 쌓은 감정들이 귀기울여듣기를 방해하곤 한다. 듣기에 엄청난 저항이 밀려올때면 눈알이 핑핑 돌며 내적갈등이 피어오른다. 으아…도망갈까….
#아티스트웨이감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