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못 마시는 여자

커피농장, 코스타리카

by 구수정

까페를 자주 들락거리는 나이지만 늘 고민하는 것이 있다. 무얼 먹을까... 커피를 못 마시니 참 마실 게 없다. 어릴 때는 커피가 아니어도 되었다. 신선한 과일이 든 에이드나 생과일주스도 괜찮았고, 여름엔 팥빙수도 좋았다. 핫초코 위에 생크림을 듬뿍 얹어 먹는 달달함은 좋다 못해 사랑했다. 그런데 나이를 들고 보니 단 맛이 물리고, 또 몸에서 거부를 한다. 단 걸 피하다 보니 정말 마실 게 없다.


지인 덕에 커피를 잘 한다는 집에 찾아가서는 내가 마실수 있는 게 뭔지 고르기가 참 민망하다. 원두는 콜롬비아가 부드럽고, 어디 지역은 조금 신맛이 나고, 로스팅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고, 물의 온도, 드립의 속도 등을 조절해야 한다던지... 우유의 비율에 따라 이름이 다르고 에스프레소가 진짜라는 뭐 그런 얘기를 들으면 무슨 소리인지 어질어질하다. 커피는 내게 그저 쓰고 잠 안 오는 물일 뿐.


그런데 커피 향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향과 맛은 그닥 매칭이 잘 되지 않지만 말이다. 어쩌다 커피 향에 끌려 아메리카노라도 마시는 날에는 밤에 뒤척이다 기어코 푸른 새벽에 동이 터오는 것을 목격하기 일쑤다. 카페인이 너무나도 잘 흡수되는 체질인 모양. 차 종류도 뭔가 나를 매혹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차에 카페인이 아주 없지는 않으니.


커피의 첫 번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홍차였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얼그레이, 아쌈, 다즐링 등 커피의 원산지만큼이나 이름만으로도 폼나지 않은가? 비록 이 모든 홍차의 종류를 내 혀로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또 어떤 것은 향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게다가 스팀우유를 넣어 밀크티도 만들 수 있었다. 끝내준다. 대학교 2학년 추운 겨울, 의상학과 다니는 동아리 선배의 졸업패션쇼에 선배가 추운데 와줘서 고맙다며 쥐어주고 간 뜨끈한 데자와를 잊지 못한다. 나는 그날 이후로 데자와에 빠졌다. 한때 차 전문점에 폭 빠졌고, 집에서도 해 보려 밀크팬과 차 종류를 샀다. 대만에 갔을 때 버블이 든 쩐쭈나이차를 하루에 세 잔씩 마셨다. 지금은 다행히도 편의점에 밀크티 종류가 많아졌기에 새로운 것이 나오면 꼭 시식을 해 본다.


그러나 홍차에 아예 카페인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복불복으로 나는 잠 못 이룬 날들이 생겨났고,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공차를 마신 날이면 한 이틀 정도는 밤을 새웠다. 까페에서 밀크티를 주문하면 가루로 된 설탕 범벅의 밀크티를 타 주기 일쑤다. 이럴 거면 편의점 가서 사 먹지 왜 까페 왔노...내가 까페에서 핫초코 다음으로 많이 주문하는 밀크티이지만 티백이 아니라면 사양하게 되었다.


코스타리카에서 숨을 들이쉬면 커피 향이 나


그러던 언젠가 중미에 있는 코스타리카라는 나라에 여행을 갔다. 이름도 낯선 코스타리카. 그저 일정 중에 있던 나라였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 없이 방문했다. 푸른 숲과 바다, 일조량이 좋고 항상 날씨가 좋은 나라. 그래서 미국의 부자들이 휴양을 많이 온다는 그런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커피가 유명하다고 했다. 커피.... 일정 중에 커피농장 방문이 있었다. 뭐지? 와인농장 방문도 아니고 내겐 그다지 기대가 없는 여행 일정이었다. 커피라니...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를..


농장은 엄청나게 넓었다. 산 하나가 통째로 커피나무 천지였다. 나무라고 하기엔 나지막한 커피나무가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중미 특유의 고도에 하늘이 닿을듯한 산등성이, 거기에 커피나무 숲이 있었다. 터덜터덜 좁은 길을 소형버스가 겨우 기어올라가 우리는 커피콩이 한잔의 커피가 되는 과정을 담은 체험관에 들어섰다. 음~ 고소한 커피 냄새가 나의 후각세포를 일깨웠다. 여기에서 자라 건조과정을 거쳐 바로 로스팅한 커피콩을 갈 때의 향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했다. 아.. 마시고 싶다. 마시고 싶다. 향이 너무 좋아 거부할 수 없는 시식코너... 오늘 밤 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뛰어넘어, 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마시고 싶다. 마시고 싶다. 마법에 걸린 듯 코스타리카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터지는 향기. 그리고 생각보다 구수한 보리차 같은 맛에 당황했다. 쓰지 않은 커피는 처음이었다. 신선함이 가득했다. 커피도 신선할 수 있구나. 다시 한 모금 입에 가득 넣고 코로 숨을 내뿜었다. 향기가 더 크게 느껴졌다. 커피 마스터가 혀을 굴려 맛을 느껴보도록 안내했다. 정말 구수했다. 커피가 말이다. 맛이 있었다. 결국 지갑을 열었다.




털털털털 버스로 농장을 내려오면서 다시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잠이 안 올까 봐 말이다. 가이드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걱정 말라고, 신선한 커피는 괜찮다고. 그건 참말이었다. 신기하게도 아주 잘 잤다.

그 뒤로 그런 커피는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기준은 코스타리카 농장에서 맛본 커피가 되었다. 이제 냄새만 맡아도 원산지는 알 수 없으나 신선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될수록 쓰고 누린내가 났다. 그리고 잠은 이틀 정도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아, 그곳에서 사 온 커피는 결국 커피 내리는 도구가 없어서 마셔보지 못했다.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


그 다음에 만난 커피는 오스트리아 커피였다. 비엔나에 가면 정작 비엔나커피는 없다는, 하지만 모차르트가 갔다던 까페는 꼭 들린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마실 수 없지. 그리고 모차르트가 마셨다던 아인슈페너를 한잔 시켜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입 안에 단맛과 쓴맛이 동시에 싸우다 사그라든다. 쓴 맛이 너어무 쓴데 설탕 맛으로 이겨낸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그날 밤을 통째로 반납해야만 했다. 하루 종일 뚜벅이로 링슈트라세를 걸어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본 선배 언니가 내게 디카페인 커피믹스 하나를 건네주었다. 딱 두 개 챙겨 온 것인데 너에게 준다며 말이다. 오호라! 나는 대학교 2학년 데자와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전율을 느꼈다. 언니 고마워요!


디카페인 커피는 신세계였다. 맛은 좀 덜했지만 그래도 커피 코스프레는 할 수 있었다. 달달한 케이크와 함께 쌉쌀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다만 인스턴트로 말이다. 여전히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


베트남 연유커피


아! 인스턴트커피를 이야기하자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가장 최근 맛을 본 커피는 바로 베트남 커피였다. 베트남도 커피 산지로 꽤 유명하다고 들었다. 게다가 르왁인가 하는 고양이 똥 커피도 익히 전해 들었다. 일행 중 한 명은 커피매니아여서 늘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베트남 커피는 한국의 아메리카노보다는 꽤 진했다. 맛이 궁금해 조금 맛을 봤다가 혼쭐났다. 그러다 베트남 후에에 갔을 때 묵은 호텔 조식에 웨이터가 우리에게 물었다.


"white coffee? or black coffee?"


블랙커피는 알겠는데 화이트 커피는 뭐지? 싶어 물었더니 화이트 커피는 연유를 넣은 라떼 같은 거란다. 카페라떼를 화이트 커피라고 표현하다니. 그래도 블랙커피보다는 덜 쓰겠지 하며 화이트 커피를 시켰다. 그런데 웬걸 너무 써서 한번 더 혼쭐났다. 또 어김없이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스턴트 베트남커피 G7이었다. 너무 꼬소한 맛에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 커피를 타 주고는 나는 한입만 찬스를 쓴다. 아직도 우리 집 티테이블에 있다.


하여간 이렇게 커피를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에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바로 스*벅*에서 디카페인 커피 메뉴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디카페인 커피를 이제 인스턴트가 아니라 진짜로 마실 수 있다니! 이산화탄소를 사용하여 카페인을 제거할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그러니까 나는 이 디카페인 커피 소식에 흥분하여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썰을 풀고 있는 중이다. 야호!



@2006 CostaRica, San Jose

@2011 Austria, Vien

@2016 Vietnam, Hue


*커피콩과 코스타리카 사진은 구글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