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통하지 않아도 조직에서 소통은 중요
매일 매일 열심히 드라마를 시청하시는 나의 어머니는 드라마와 대화를 하신다. “아이구 그러면 안되지.” “저런 저런, 못된...xx” “저쪽으로 피해야지..”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결론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기있는 드라마라도 종영한 후에 몰아보기를 하고 베스트셀러는 마지막장을 먼저 본 후에 첫 장을 펼친다.
방영 중인 드라마는 자주 속터지는 일명 고구마 장면이 나와서 자칫 잘못하면 혈압이 올라 죽을 수도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오래살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일명 「막장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서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마음에 맞지 않는 상대방에게는 보자마자 “사자후”를 날린다. 물을 끼얹는 것은 매우 기본에 속하는 것이고, 가끔 밥상도 뒤엎는다. 감정의 극적 형태를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따귀를 때리는 것이아닐까 싶다. 처음에 따귀는 손으로 때리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등 김치를 활용한 따귀도 새로이 등장했다. 드라마는 현실보다 낫다. 드라마에서는 할 말은 하게 해준다. 상대방에게 왜 화가 났는지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시청자가 알 수 있게 설명할 기회는 주는 것이다. (그 점이 좀 흥미롭기도 한데 아마 연극에서의 방백처럼 시청자들에게 굳이 설명하고자 하는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본 후 판단하겠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
중국드라마 “량야방”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극 중 황제는 두 명의 황자가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합리적이라 판단되는 안을 채택한다. 황자들은 자신의 안이 채택되기를 바라며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내놓고 그 주장하는 근거와 배경을 설명한다. 황제는 황자들이 토론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할 뿐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황자들이 답을 찾아가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황제의 질문은 단순하다. 황자가 낸 대안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 대안을 실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이 두 가지 질문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대의명분이다. 황제는 정치적으로 어떤 일을 행할 때에 신료들이 받아들일 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자원의 동원가능성이다. 대안을 실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원이 필요할 것인지 매번 고민하는데, 만약 황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겠다고 하면 바로 그 대안을 채택한다. 세 번째는 한 가지 대안으로 얻는 부수적인 효과이다. 즉 하나의 정책을 실행했을 때 황제에게 위협이 되는 세력의 힘을 약화함과 동시에, 백성으로부터의 칭송을 받는 것과 같은 일타쌍피는 기본이다.
우리의 ‘소통’의 목적은 무엇인가? 신변잡담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조직에서의 소통은 아마도 조직의 목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정부조직 내에서의 소통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기본 원칙은 흔히 행정에서 이야기하는 행정이념과 같다. 행정학 개론에서는 행정이념을 공공성, 민주성, 사회적 형평성, 효과성(효율성)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불특정 다수의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도로, 전철, 기차 등은 공공성에 입각한 사회기반시설 구축정책이다. 특정한 소수를 위한 시설과 정책들은 사회적 형평성에 근거한 것들이다. 이와 같이 정부에서는 하나의 정책을 만들어 낼 때에 행정이념들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만약 공공조직내에서 정책을 만들어 내기위한 소통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제시할 수 있는 질문은 공공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민간기관이라면 어떠할까? 물어보나마나 당연히 질문은 ‘이익이 되는가?’일 것이다. 그 다음 질문은 그 조직을 이끌어가는 CEO의 회사운영방침에 달려 있을 것이다.
‘량야방’에서의 황제가 질문을 통해 답을 얻었던 것과 같이 조직의 CEO 혹은 회의 진행자는 몇 가지 질문만으로 조직내 소통을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다. 회의 목적, 대안을 제시한 근거와 이유, 대안의 실행가능성, 대안의 결과(얻을 수 있는 이익)에 관한 질문이다. 회의 초반에는 중구난방식 이야기가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직에서 경험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대안들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다 해봤는데...“ 라고 매우 부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말이 안되는 대안들일지라도 일단 접수하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로 인한 효과는 무엇인지 물어보길 바란다. 예전에 해봤는데 안되는 것일지라도 지금은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 과거에는 단속사항이었지만, 지금은 계절을 막론하고 일상적 복장이다. 예전에 동물은 집 밖에서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반려‘라는 명칭을 붙이고, 방안에서 키우며 반려동물을 위한 호텔, 병원도 많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기계가 말하는 것은 SF영화나 만화에서만 가능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애플의 ’시리‘ 갤럭시의 ’빅스비‘ 등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검색 내지는 답변시스템이 개발되어 사용화되고 있다.
질문을 한 후 답을 듣는 것, 그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된 생각을 질문으로 바꾸어 상대방에게 의견을 구한다. 상대방은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상대방이 생각을 정리할 기회와 시간을 주는 방법은 바로 나의 질문에서 나온다. 질문과 답이 반복해서 이루어진다면, ’소통이 원활하다.‘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회의에 참석해서 만족감을 얻은 적이 있다면, 소통이 원활했거나 본인의 의견이 받아들여졌을 때일 것이다. 본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토론이었고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결과는 수용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대화에의 참여자들이 만족했을 때 비로소 ’소통‘이 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은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이 절대 합일이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상대방과 나의 의견이 어느 정도 접점을 이루게 되고, 그로 인한 심리적 만족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다. 물론 질문을 하되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A인지 B인지에 대한 선택을 요구하는 닫힌 질문은 더 이상의 설명을 듣지 않겠다는 의지를 포함하지만,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 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행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이 존중받았다고 느끼게 되면 상대방 역시 존중할 준비를 하게 된다.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화가 많이 난 민원인이라도 일단 먼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면 공무원의 설명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듣고자 한다. 내 이야기를 성의껏 들어준 상대방을 다음번에도 또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나서 경청하면 대화는 당신이 주도하게 된다. 당신의 질문이 상대방의 대답을 요구하기 때문에 당신이 우위를점하게 된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은 어딜가나 환영받고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다.“
「질문이 답을 바꾼다」앤드루 소벨」·제널드 파나스 지음, 안진환 옮김. 도서출판 어크로스. 32쪽 참조
* '오토저널', 2017.10, 자동차공학회: 기고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