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타파되어야 할
공직에 들어와서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다. 직원들과 무슨 계획 수립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팀장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런게 되겠어요? 내가 공무원 생활 20년이 넘어서 잘 아는데...”
좀 당황했던 것은 소위 전문가로 들어온 내 전문성이 순식간에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해 왔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새로이 제안되는 방식으로는 될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종종 팀장은 뒤에서 내 욕을 했다. 같이 욕하는 자리에 있었을 사람들로부터 들었다. 뒤에서 내 욕을 하든말든 신경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직접 듣게 되었을 때는 상상하지 못할만큼 화가 났더랬다.
“전문가도 아닌게 들어와서 전문가랍시고 .... 그게 될 줄 알아?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과장이라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관행이다.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고 하는 일들 중
어떤 것들은 ‘관행’ 이다.
언론에 보도된 공무원 사회에서의 대표 사례를 살펴보자. 첫째, 출장에 관한 것이다. 출장을 나갈 일 없는데도 출장 신청을 하고 개인 볼 일을 본다. 나만 출장수당 받으면 눈치 보이니 출장 신청할 때 다른 직원들도 함께 이름을 올려준다. 동료가 출장 나갈 때 함께 이름을 올린 직원들은 매우 당연하게 사무실에 앉아 출장 수당을 받는다. 둘째, 초과근무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한다. 우연히 다른 직원들의 행동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다. 별로 할 일이 없는데도 저녁 먹고 와서는 승진에 필요한 가점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한다. 저녁 술자리에 갔다가 느지막이 사무실에 돌아와 초과근무를 찍고 간다. 나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는 밀린 업무가 없어도 초과근무수당을 받는다. 출장비를 못받는 사람은 챙길 것을 못챙기는 사람이다. 초과근무수당은 제2의 월급이다. 어떠한가? 이제까지 모두 해왔던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월급이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도 한다. 이것은 관행이다(‘초과근무수당 눈먼돈? 그림의 떡?’ 서울경제 2017.11.1.).
다른 경우를 보자. 직원들이 공동경비로 쓰기 위해서 매월 일정금액을 적립한다. 직원들끼리 친목을 위한 목적으로 혹은 구내식당밥이 지겨울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상사가 밥 먹을 때나 상사의 선물을 위해 사용한다. 저녁 회식 후 술집은 법인카드가 안되니 상사의 술을 위해 직원들의 공동적립금을 사용한다. 만약 이러한 공동적립금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과거에는 어떤 형태로든 비자금을 만들어 상사를 모시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상사는 부하직원이 쓰는 돈이 어떠한 돈인지 알 필요가 없었다. 부하직원은 불만이 있지만 말은 안한다. 상사는 직원들을 착취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나 모른척한다. 부하직원들은 자신이 승진 이후를 생각하며 모른척한다. 이 또한 관행이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겠다. 과거에 상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 이른바 전별금을 냈다. '전별(餞別)'이란 떠나는 사람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작별한다는 뜻이다. '전별금'의 사전적 의미는 '떠나는 사람에게 아쉬움의 표현으로 주는 돈'이다. 일반적으로 공직사회에서 어떤 직무와의 대가관계로, 법조계에서 검사나 변호사, 판사에게 전별금이 주어진다. 처음에는 십시일반 조금씩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 준비 명목으로 주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별금은 의무가 되었다. 상사는 누가 전별금을 냈는지 확인한다. 전별금을 내지 못한 부하직원들은 찜찜함을 감출 길이 없다. 그래서 전별금은 뇌물성을 띠기도 한다. 이 또한 관행이다(‘전별금, 뇌물인가? 관행인가?’ SBS뉴스 2007.2.12.).
이제까지 그래왔으니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리더가 아니다. 리더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관행’이다. 관행은 또 다른 관행을 낳고 그 결과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처음엔 미약하였으나 종국에는 거대한 어둠으로 성장한다. 도저히 뿌리 뽑을 수 없는 ‘○○피아’가 된다.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의 잊을 수 없는 참담한 사건들은
대부분 관행에서 시작되었다.
“소방인력 및 장비 등의 확충이 시급하다.
누적된 관행을 고치지 못하면 후진적인 안전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문제요소들을
철저히 찾아내 바로잡았어야 했다.”**
우리가 즐겨보는 방송사고 역시 관행으로 인한 것들이 많다. 스타 배우를 내세워 떠들썩하게 출발했던 드라마 ‘화○기’는 방송 2회 만에 역대급 대형 사고를 냈다. 해당방송사는 지상파를 위협하는 ‘드라마 왕국’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속도전’으로 치닫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고들 한다.
“앞부분이 방영되는 동안 뒷부분의 작업이 완성될 줄 알고 방송을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방송사고는 그 전에도 있었다. ‘시크릿가든’(2010)도 그랬고, ‘싸인’(2011)도 그랬다. 관행은 문제 그 자체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관행을 타파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행태로부터 벗어나 지금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상황에 맞게 조직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해야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관행에 대해 눈감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전에는 그랬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그런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지만 실상은 버려야할 것이다.
* 참고: "안전에 소홀한 관행 고쳐야"… "세월호 사건과 똑같다" 서울경제. 2017.12.25.
** 참고: 낚싯배·제천화재…세월호 잊지 않겠다던 사람들 다 어디갔나. 미디어펜. 2017.12.26.
*** 참고: 역대급 방송사고 뒤엔 ‘빨리빨리’ 드라마 제작 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