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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Apr 20. 2017

첫번째 퇴사

기회를 보다

첫 직장은 제일제당이었고 7년 좀 넘어 열심히 다녔다.

학교 다닐때는 회사란 곳은 절대 안가! 하던 자존심도 아닌 고집이 있었는데 졸업이 다가오고 원하던 언론사 취업이 안되고 그러니 마음이 약해지면서 남들도 다니는 일반 기업 나도 좀 다녀보지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제일제당이 공채에서 여성인력을 30명 뽑는다고 신문광고를 어마어마하게 했다. 당시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지원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봤다.

당시 제일제당은 설탕을 비롯한 식품과 생활용품, 사료사업과 의약품 사업을 하던 곳인데, 삼성그룹에서 독립하면서 엔터테인먼트로 분야를 넓히고 그룹으로 변신을 하는 시기였다.



1년은 의무적으로 영업 OJT를 받았고, -지금은 아마 기간이 짧아졌거나 없어졌을 수도 있다 - 홍보실로 옮겨 이벤트를 2년쯤 하고, 마케팅으로 옮겨 4년 정도 제품마케팅&브랜드관리를 했다.

문과를 나온 관계로 통계니, 심리니, 손익이니 하는 것은 들어보지도, 구경도 못한 나인데 당장 엑셀표와 함께 밀어닥치는 자료와 숫자들은 무시무시했다. 배워가며, 싸워가며 7년 넘어 다니고 있는데 이직이란 바람이 회사에 불어왔다.


그때 내가 그린 미래는 겨우 5년~7년 이었다. 회사를 다녀도 내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급은 대리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사했을 때 전사에 여자 과장이 한명 뿐이었는데, 그분은 좀 다른 트랙으로 들어온 분이라서 역시 간부가 되기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위의 대리 여자 선배들도 몇 되지 않았고, 고졸로 들어와서 매장경험을 오래 한 여선배들은 나와 다른 직급체계에 있었다. 미래도 비전도 없어 보였기에 시한부 직장인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주위의 똑똑한 사람들은 다들 MBA를 가고, 어디선가에서 이직 의뢰를 받았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좋겠다..하고 부러워하며 사는데, 대리 승진을 한번 낙방했다. 남녀차별이란 그때도 지금도 공고해서 가정있는 남자 동기들은 백프로 대리가 됐다. 일 정말 열심히하고 잘 한다고 생각한 여자 동기는 떨어지고 매우 우울해했다. 난 뭐 그러려니.. 대리 달면 회사 끝날텐데  싶어 애써 속상한 마음 갈무리 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헤드헌터가 나한테 연락을 했다.

경쟁사에서 사람을 찾고 있는데 한번 인터뷰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WHY NOT? 이라며 아무 준비도 없이 갔다. 그리고 아주 망신을 당했다. 면접에서 망신 당했다는 사실을 제법 시간이 지난 뒤 깨달았다. 천둥벌거숭이같은 인간이었다. (첫 인터뷰에 대한 글 => https://brunch.co.kr/@crystalchoi/39)


그러다가 한 미디어 회사에서 오퍼가 왔다. 임원 면접과 오너 경영진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는 얘기와 함께 회장님이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신다는 피드백도 받았는데 연봉 협상에서 회사의 제안이 좀 이상했다. 얘기된 것과 다르게 제시를 하는데 빈정이 상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하도 기고만장해 있는 상태라 그럼 됐다! 하며 안가겠다고 통보했다. 소비재에서 제일제당 외에 갈 수 있는 곳은 LG, P&G 아니면 없다고 생각했고, 산업을 옮긴다면 삼성 정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 회사는 내가 마음을 크게 써서 가 주는 곳이었다. 쓰고보니 아주 재수없는 인간이다. 그래도 그게 그 당시 나였다.

어쨌든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자 헤드헌터가 찾아오고, 면접 본 임원까지 찾아와 마음을 돌려달라고 사정했는데 거절했다. 그렇게 짧은 상간에 말이 바뀌는 회사는 믿을 수 없고, 미안하지만 좋은 분 찾으라고 했다. 그때 그 분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새파란 젊은 것한테 사정하시던 그분의 당황스러운 표정.

회장 면접까지 다 된, 꼭 데려오라고 한 사람을 놓치게 됐으니 얼마나 곤란했을까? 그런데 잘난 맛에 살던 난 그분의 처지는 생각할 머리가 없었다. 그리고 난 나중에 벌 받게 된 것처럼 그 계열 회사를 다니게 된다. 세상에 절대! 이런건 없는거다.


그러다 또다른 오퍼를 받았다. 외국계 가전회사였다. 모든 조건이 좋았고, 회사는 작았지만 할 일도, 권한도 많아서 흔쾌히 오퍼를 받아들였다. 그 즈음 내가 하던 일은 전사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경영컨설팅 중 마케팅 부문의 프로젝트에 컨설턴트들과 파트너가 되어 방향성 잡고, 실행성을 검토하는 일이었다. 제품마케팅을 하던 나로서는 그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하는 생각이 후일 들었다. 게다가 그 조직으로 발령이 날 때 들었던 이야기가 "너 말고 갈 사람이 없다" 였는데, 반드시 나여야 프로젝트가 더 잘된다는 의미보다는 넌 여기서 별로 쓸모가 없다로 들렸다. 거절해도 발령은 나게 돼 있다고 했고, 발령 난 뒤 컨설턴트도 아니고, 마케터도 아니며, 주어진 작업도 없고, 찾아서 할 일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TF멤버로 몇 달을 보냈다. 그렇게 의미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 너무 싫었던 터라, 외국계 가전회사의 오퍼는 거절하고 싶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친한 사람도, 얘기할 사람도 없는 모래알 같은 부서에서 조용히 퇴직 서류를 작성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부서장에게 퇴사 의사를 알리고,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그렇게나 악착같이 다니고 프라이드를 가졌던 첫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좀 아팠다. 한달 정도. 마음이 아파서였던거 같기도 했다.


그런데 웃긴 일이 일어났다. 그 회사의 본사가 망한 것이다. ㅎㅎㅎㅎㅎㅎㅠ.ㅠ

앞서 했던 못된 짓들을 한번에 다 벌 받는 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은 자유인으로 여기저기 프로젝트를 하며 약 9개월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두번째 제대로 된 회사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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