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입사와 퇴사
세번째 퇴사는 기획퇴사? 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입사가 기획입사? 였고 퇴사는 그 기획이 완성되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따라온 것 뿐.
기획입사가 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는데, 별것은 아니고, 알고자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작정하고 회사를 들어간 것을 말한다.
두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2년쯤 런던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창업과 취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때, H사의 브랜드 관리자 포지션 오퍼가 왔다. 이전 회사 다닐때 H사의 급부상으로 꽤나 말이 많았었고, CEO의 유명세와 센세이셔널한 이벤트로 H사에 대한 주가가 한참 높아 있었다.
두번째 회사가 금융계라서 금융권 아닌 곳을 찾고 있었는데 H사라기에 혹했다. 짧은 시간 내 사세를 확 일으킨 점, 세련되고 쿨한 마케팅과 CEO의 역량이 너무 궁금했고 가기로 결정했다.
1년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브랜드 전략과 고객경험관리, 기업이미지 제고 이벤트 등의 업무를 했다. 브랜드팀 안에 on line 파트도 있었고, CI 디자이너도 계약직으로 있어서 당시에는 팀 하나 치고는 꽤 컸다. 나는 전략파트장으로서 기업브랜드와 상품부문 브랜드전략과 그에 관련된 신규 업무들, 그외 광고와 이벤트가 아닌 거의 모든 업무를 맡아서 했다.
1년쯤 다니자 이 정도면 충분히 봤다,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EO의 영도적 지도력? 경영자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수긍하고 존경하지만, 그로 인한 조직의 불필요한 텐션과 지나친 이기주의, 성과주의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다. 만약 삼성이 유럽형 축구라면 H사는 남미 축구같은 플레이를 펼치는 회사였다.
H사 사람들은 극도로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하고, 사내 경쟁도 치열했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고, 염증을 내는 사람도 많았지만, 맨파워는 꽤나 우수해서 짧은 기간이지만 일하는 맛이 남달랐던 곳이다.
그만하면 충분해..하며 다른 기회를 생각하고 있는 중에 해드헌터를 통해 D사 제안이 왔다. 글로벌 브랜드팀을 만드는데 팀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듣자마자 십수년의 노가다를 총정리해서 기초공사부터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강렬하게 가고 싶었다. CMO가 없는 회사인지라 팀장이지만 그런 역할을 실제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 제안을 받을 무렵 H사에서 마지막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회사 이미지 제고를 위한 기업이벤트를 기획하라는 숙제를 받았었고, 그 당시까지 우리나라에 없었던 형식의 이벤트를 기획을 해서 본부장 컨펌을 받고 실행을 넘긴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잘 알아서 진행되겠거니 마음 비우고 퇴로 모색 중이었는데, 이벤트를 약 한달반 남겨놓고 구원투수로 급투입됐다.
챙겨보니 거의 아무것도 진행되어 있지 않고, 의사결정꺼리는 산적한 상태여서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전략 담당 답게 우아?떨고 자제자제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이다 싶으니 몰아치는 프로젝트 매니징 스킬을 보여주마! 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했다. 그리고 아주 홀가분하게, 이벤트 정리까지 끝내고 퇴사했다.
새로운 가능성이 기다리는 D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