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몸과 마음
2015년 내내 회사는 조직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 달 한 달 지나가며 들려오는 소식은 점점 암울했고, 희망퇴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역시 그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주위에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짐을 싸고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고, 내게 언제 그 순간이 올까 생각하며 초연한 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상사와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터라 몇 년간 쌓여온 스트레스도 컸었는데 그런 상황까지 오니 회사를 그만둘 때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항상 기초체력이 좋고 회복력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바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 발을 디디는 순간, 발이 부어 있음을 알았고, 거울을 보면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으며, 손을 깍지를 껴보면 붓기가 느껴졌다. 목디스크 전용 베개를 사용했지만 항상 목과 어깻죽지는 뻐근해서 두통도 자주 있었다. 설상가상 소화력은 극히 떨어져 밥을 먹으면 체하기 일쑤였고,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다니던 운동도 중단한 상태였다.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간 기능이 좀 떨어져 있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지만, 신체 모든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끽끽거리며 겨우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가장 불편하고 힘든 길을 33일 내리 걷겠다는 결심을 마지막까지 망설이게 한 것은 내 건강에 대한 자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을 쉬면 괜찮겠거니 했지만, 건강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몸은 붓고, 피로함은 그대로이고, 갑자기 테니스 엘보까지 생겨서 왼팔을 제대로 쓰기도 어려웠다.
제일 걱정했던 신체 부위는 아픈 무릎과 어깨, 족저근막염 있는 발이었다. 과연 하루에 최소 20킬로를 걸을 수 있을까 싶었다. 친구들은 반도 가기 전에 무릎이 망가질 거라고 했다. 무거운 배낭을 하루 종일 매고 다니면 자세도 구부정해지고 목디스크가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에 포기하게 될까봐 겁이 났고, 그 길을 포기하고 돌아올 경우 스스로에게 느낄 실망감이 싫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상태였을 때 그저 포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품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서 주위에 여행 계획을 털어놓았다. 무릎 망가지면 돌아오면 되는거지 하는 될 대로 돼라 하는 심정이 반, 그래도 설마 내가 남들 다 하는 걸 못하겠어? 하는 오기가 반이었다. 그리고 만류와 걱정을 들으면서 안 가면 되는 것을 굳이 가겠다고 고집했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순례길 가기 전에 많이들 걷는 연습을 한다. 나도 3주 전부터 1주일에 1~2회씩 걷기 시작했다. 처음 걸은 날은 집에서 출발해 18킬로를 걸었는데, 고관절이 아파서 그 이후 이틀을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너무 미련했다. 첫날은 5킬로 정도만 걸었어도 좋았을텐데. 그렇게 크게 수업료 치르고 8킬로, 14킬로, 19킬로로 거리를 늘여갔는데 의외로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짐이 없어서 누르는 무게가 없으니 훨씬 자유로왔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산길 19킬로를 걸은 날 고관절도 아프지 않고, 무릎도 아프지 않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9킬로의 배낭을 메고 다닌 첫 열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왼쪽 고관절이 아파서 한걸음 한걸음 제대로 걸으려고 자세에 집중을 많이 했다. 어느덧 고관절 통증도 사라지고, 걱정했던 족저근막염도 생기지 않았고, 무릎도 전혀 아프지 않은 신기한 상태로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출발하기 전에 스트레스와 피로로 퉁퉁 부은 호빵이었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땐 부기가 완전히 빠지고-살이 빠지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단단한 느낌-다리에도 근육이 다시 제대로 잡혀 날쌔게 걸을 수 있었다. 이삼일에 한 번씩 찾아오던 두통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어깨의 통증도, 견갑골 부위의 통증도 말끔히 사라졌다. 유일한 통증은 발이었는데, 수십 일간 체중과 배낭의 무게를 감당한 발의 통증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한가지 정말 신기한 것은 이전 수술로 인한 근육 경련 증상이 사라진 것이다. 복강경 수술을 한 자리들이 몇개 있는데, 꿰맨 흉터가 남아있고, 몸을 구부리는 동작을 하면 가슴 아래쪽의 흉터 주위 근육들이 뭉치며 격렬한 경련을 일으켜서 요가 특정 자세를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돌아와 요가수업을 가서 이전의 경련을 일으켰던 자세를 해 보는데 아프지도 경련도 일어나지도 않았다.
수술하느라 벌렸던 곳은 피부와 근육 조직이 더 치밀하게 붙고 엉키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물리치료를 꾸준히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내 상처 역시 그랬었나보다. 십여년 동안 특정 자세에서 나를 괴롭히던 경련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 어 이상하다? 하며 요가를 했었다. 걷기가 전신운동이라더니 정말 그런것 같다.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을 뿐인데 온몸의 통증과 심한 근육 뭉침 증상, 경련까지 사라진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순례길에서 먹은 엄청난 양의 샐러드와 올리브 오일, 과일과 치킨 스테이크는 식단 교정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소화력을 다시 되돌려 주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먹기보다는 조금씩 자주 먹으며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요령도 배웠다.
서울로 돌아와서 두어달쯤 지나서 우연한 계기로 알레르기 테스트를 했다.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하는 것이라 웬만한 건강 지표들이 나오는데 알레르기도 없고, 여러 장기의 기능들이 괜찮다고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건강에 대해 안심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몸의 건강을 되찾은 것도 기적 같았지만, 정신적으로 이전에 비해 건강해진 것 같다. 이전엔 문제가 생기면 내가 아닌 남의 잘못을 먼저 찾고, 나 자신은 틀릴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무오류라니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생각인가? 회사를 다니는 십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내 욕심과 이기심, 호승심이었다. 나쁜 사람도 있고, 나쁜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던 것도 맞지만 분노와 복수심, 자책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힌 것은 나였고, 스스로 걸어 들어간 지옥에서 망가졌단 사실을 알았다.
순례길 걷는 동안 이기적으로 드는 생각들을 일단 내려놓고 내가 도움받고 있는 것, 남들이 나에게 해 주는 말과 행동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해 보니 지난날의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물 한잔도 내게 팔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마시지 못하는 주제에 잘난 것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독선적인 생각을 놓게 되었다. 나도 가끔은 남들을 돕고 살지만, 그보다 백배 천배 많은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 마음이 훨씬 평화로워짐을 느꼈다. 설령 불의에 분노를 느끼더라도 분노에 내 삶을 소진시켜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녀온 지 10개월쯤 지나니 다시 식습관이 흐트러지고, 운동도 들쭉날쭉하며 몸에 조금씩 통증이 생기고 있긴 하지만, 뭐랄까, 자신이 생겼다. 난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삶을 희망적으로 만든다.
물론 그렇다고 그 생각만으로 몸과 마음을 막 굴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적당한 선에서의 절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자기점검을 하게 됐다.
순례길에서 혹시 다치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겨 돌아오게 됐다면 어땠을까?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라 싶고, 작년 이맘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올해는 너무나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래서 가끔씩 산티아고 순례길은 생명의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