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리천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탈 Jul 21. 2017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어

보통여자의 산전수전공중전

대학 3학년 1학기까지 내 꿈은 교수였다. 유학 다녀와서 교수가 되는 과정이 내 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님도 항상 그 계획에 맞장구를 쳐 주셨다. 그러다가 3학년 1학기 여름방학 때,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심한 사건이 생겼다.


우리 과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독일 괴팅겐대학과 제휴를 맺어 일종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우리 학과 3~4학년들과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30여명 규모의 그룹이 독일에 가게 됐다. 난 어느 대학으로 유학을 가야하나 고민하던 시점이라서 괴팅겐대학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청을 해서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 미래가 바뀌었다.


괴팅겐대학은 중세시대부터 이어져온 유명한 대학도시로,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도 유명하고 전통있는 학교다. 철학, 법학, 신학과 문학으로 특히 알아주는 곳인데, 괴팅겐이라는 도시 전체가 대학 때문에 만들어진 곳이라서 거주자들의 70퍼센트 이상이 학생들과 교수들이다.

우리가 간 때가 마침 여름이라 방학이 시작한 캠퍼스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고국에 돌아가지 않은 유학생들만 일부 남아 있었다. 학생들이 비운 기숙사에서 묵으며 그 당시 처음 본 터키 학생과 밥을 해 먹으며 서툰 독일어로 열심히 자기 나라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먼저 놀란 점은 우리나라처럼 담으로 둘러싸인 캠퍼스가 으리으리한 정문을 세우고 으스대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 정문이 없어? 하는 질문을 다들 했다. 왜 대학이 정해진 구역에 있지 않고 이렇게 흩어져 여기저기 있을까, 이렇게 대학 건물 바로 옆에 가정집이 있고, 꼬마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 옆에 대학생들이 잔디밭에서 이야기를 하고 책을 보다니, 너무 이질적이고 이상하다 생각했다. 도시 곳곳에 학교 건물이 있고, 수업을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 달려 다른 건물로 이동을 하는 것 역시 놀라왔고,  인문관에서 법학관까지 십분만에 헉헉거리며 달려가는 우리보다 자전거 타고 도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가야하는 괴팅겐 학생들이 더 안타깝다 이런 얘기들을 하곤 했다. 이후 대학이라는 기관의 근원과 운영방식에 대해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일반인들이 살기 시작한건 학교가 커지면서부터였다는 것도 알았다.


대학에 대한 소개와 독일어 수업, 문화 수업을 하면서 학교에 대해, 도시에 대해, 독일 생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고,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정말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는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을 간들 독일어 원어민인 독일 학생들하고 독문학을 논하는게 말이 되나? 하는 자괴감으로 무척 괴롭기도 했고, 선진국의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능률과 효율성, 몰랐던 문화예술 분야에 접하면서 니벨룽겐의 반지와 괴테의 파우스트를 분석하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 이후 3학년 2학기는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무엇에 한대 맞은것 마냥 멍한 기분으로 보냈다. 나만 그런줄 알았더니 다녀온 많은 친구와 선배들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사람들, 너무 깨끗한 도시, 칼같이 정확한 버스 시간과 마침내 통일된 두 독일의 양면적 모습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독일이 이렇다면 다른 나라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을 좀 알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었다. 공부는 세상을 좀더 알게 된 이후에 해도 되지 않을까, 이미 어느 정도 원하는 분야도 좁혔고, 과에서 우수학생 중에 끼기도 했으니 기초는 된 셈이야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유학을 단념했다. 그리고 넓은 세상을 알아볼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아보다가 우물안 개구리 같은 내 눈에 기자, 리포터 이런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4학년을 얼마 앞둔 겨울 방학때 언론고시를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를 꺼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