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이 없는 브랜드에게는 진정성도 없다

밀레니얼세대의 요구, 브랜드의 진정성

by 크리스탈

진정성(Authenticity), 대체 그게 무어라고 수 많은 브랜드가 추앙을 받기도, 부끄러운 이름이 되기도 하는가?

브랜드의 진정성은 대체 무엇이며, 무엇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텅 빈 수퍼마켓


2017년 8월, 독일의 수퍼마켓 Edeka는 외국에서 생산, 수입된 제품을 매장에서 모두 치우는 캠페인을 했다. 독일 제품이 아닌 제품들이 있던 자리에는 "우리는 국내 생산품만 취급합니다"(의역)라고 적힌 안내문을 게시했다. 이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이며 위험한 수위에 이르고 있는 외국인혐오정서에 대한 브랜드 차원의 직접적인 의견 표현이었다.


많은 외국에서 온 제품을 치우고 난 뒤, 매장이 거의 텅 비어버린 광경을 본 직원들은 몇 개 채워지지 않은 선반을 보며 깜짝 놀랐고, 그 날의 매출액을 생각하면 암담했을 것이다. 손님들 또한 극히 제한된 몇몇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살 물건이 거의 없는 매장을 방문하고는 당황했다.



“So empty is a shelf without foreigners.”



이전이라면 외국인혐오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거나 광고를 통해 멋지게 공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외국인혐오 반대라는 문구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빈 매장을 보여주고 빈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가는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더 확실하게 전달했다. 이 캠페인은 외국인혐오 정서가 실제 생활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쇼핑, 생필품 판매라는 브랜드의 본질을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 주어, 팽배하는 외국인혐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훌륭한 캠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Edeka는 독일의 수 많은 수퍼마켓 중 하나에 불과하는 작은 체인이거나, 어느 지역에서만 세력이 있는 로컬 업체가 아니다. 역사, 규모, 매장 수, 제품다양성, 소비자 영향력 등에서 독일 최고의 브랜드로 꼽힌다.

1898년 시작해, 2019년 현재 산하에 12개의 지역 회사와 은행을 거느리고 있으며, 편의점 수준의 작은 동네소매점부터 으리으리한 쇼핑몰 타입까지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매장을 갖추고 있고, 직접적으로 Edeka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유통 브랜드들과 온라인몰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독일의 장바구니를 틀어쥐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공룡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회적 문제에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왜일까?


보통 어느 나라나 수퍼마켓에서 일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고되고, 임금이 높지 않거나, 임시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저소득 노동자들은 독일에서도 이주민이 많이 차지한다. 특히 동유럽이 EU에 편입된 후 독일로 온 많은 동구권 노동자들과 오랜 역사를 가진 터키계, 최근 밀려들고 있는 아프리카, 중동 출신 이민자들을 Edeka는 많이 고용하고 있다. 그러니, 외국인혐오가 깊어질 수록 Edeka는 고용에도 자유롭지 못하고, 그들의 (상대적) 저임금이 떠받치고 있는 수퍼마켓의 경쟁력 역시 위협받을 수 있다. 외국인혐오는 독일 굴지의 브랜드를 뿌리부터 위협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또한 그러한 나라에서 와 독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Edeka의 고객이다. 고국의 음식을 만들고, 고국과 비슷한 환경을 꾸미기 위해 그런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수퍼마켓으로 간다.

수퍼마켓의 선반을 가득 채운 그 많은 제품들은 독일인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나라들에서 와서, 독일인의 식탁과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Edeka는 자신의 업인 수퍼마켓에 들어와 있는 수 많은 저렴하고 품질 좋은 외국의 제품들을 통해 고객들에게 이야기 했다. 외국인을 혐오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의 식탁을 위협하는 것이며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우리, 더 괜찮을 수 있잖아요?


질레트의 지난 30여년간 캠페인 캐치프레이즈는 The best a man can get 이었다. 성공한 남성의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2018년 말 시작된 새 광고 "We believe : The best men can be" 한 편이 지난 연말부터 아주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면도기는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되어, 지금껏 모든 면도기 브랜드들의 광고는 스테레오타입화 된 남성의 모습과 보이스로 만들어져 왔다. 그런데 그 선두에 있던 질레트가 지나가는 이성에게 캣콜링을 하거나 추근대는 남성의 모습, 싸우는 남자아이들을 말리지 않고 방관하는 남성의 모습, 공적인 업무자리에서 여성의 일과 전문성을 축소시키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주고객인 남성에게 현재의 모습이 최선이냐고 묻고,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아지자고 면전에 대고 일갈한 것이다.


이 광고가 나간 후 어떤 소비자는 질레트 면도기를 변기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질레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SNS을 통해 항의하고, 분노하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보다 많거나 최소한 그보다 적지는 않을 다른 소비자들은 질레트의 광고에 환호하고, 브랜드에 호감을 표현했다. 비판하는 입장은 주로 부정적으로 표현된 남성의 모습에 대한 불만과 일반화에 대한 불쾌감을 이야기하고 있고, 찬성하고 옹호하는 쪽은 더 좋은 남성이 되자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어느쪽을 보는가는 개개인의 성향과 선택에 달려 있는데, 주로 보수적인 성향에서 비난이, 진보적인 쪽에서 찬성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상이 배포된 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질레트의 매출이나 이익에 그 영상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브랜드 옹호군을 대거 생산해 냈음이 밝혀졌는데, 여성이 60퍼센트 이상이었다.

이 광고가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거세게 일고 있는 페미니즘이 있다. 최근 몇년 꾸준히 이어져 온 페미니즘이 질레트 같이 전통적 남성에 집착하던 거대 브랜드마저 바꾸었다.





입장을 밝히라는 밀레니얼세대


전통적으로 브랜드들은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어떤 종류의 입장을 취하는 것도 금기로 여겨 왔다. 문제가 생기면 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아예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졌고, 그에 대한 여론의 포화에도 꿋꿋이 입을 다물어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입장을 밝히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는가? 기업 위기관리나 경영의 룰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없던 입장이 갑자기 생긴 것일까?


답은 고객의 변화에 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최소 30년을 지배할 밀레니얼 세대의 51퍼센트가 주요한 사회 이슈에 브랜드가 명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선호한다. 침묵하거나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해하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하는 브랜드를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수치는 점점 커지고 있고, 커질 것이다.

과거 밀레니얼들이 아직 소비의 메인 스트림이 아니던 시절, 그들에 대해 관찰한 많은 보고서에 훨씬 사회 참여적이고, 환경을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이야기 하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들이 드디어 사회에 나와 지갑을 열기 시작했고, 요즘 보이는 많은 제품서비스의 흐름과 트렌드는 그들이 보여주었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옷을 사지 말라는 파타고니아와 비닐백이 없는 매장을 만드는 다양한 유통매장들을 생각해 보면 너무 명백하다. 삼성전자마저도 향후 휴대폰 포장을 생분해되는 포장으로 바꾸겠다고 공표했다. 이 모든 변화는 그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요구하고 사회가 바뀌면서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밀레니얼이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Edeka는 많은 이민자 저소득층을 고용하고 있는데, 사회에 팽배하는 외국인혐오정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비겁한 일이며, 직원들을 보호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당신네 브랜드는 그 많은 외국인을 고용하고, 외국 제품을 가져다 팔면서 왜 외국인혐오문제에 입을 다무는가? 당신들은 독일 사회의 일부가 아닌가? 라고 끊임없이 묻는 밀레니얼들에게 Edeka는 말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직원과, 우수한 제품을 사랑하고, 제품과 직원들이 고객들을 위해 존재함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들을 잘 지키겠다고. 단 하루였지만 외국제품이 사라진 텅 빈 매장을 본 사람들은 그 수퍼마켓이 앞으로 외국인혐오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할 지 어렴풋이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이스는 단지 말 뿐 아니라, 행동으로 고객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서, 다양성의 인정과 포용이라는 브랜드의 철학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질레트의 경우 Edeka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글로벌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고, 파장도 크다.

소비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부머와 X세대들에게 먹히고 당연시 되어 온 고객의 이상적인 모습이 더 이상 지금 시대에는 환영받지 않는다고 밀레니얼들은 생각한다. 질레트 광고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62%의 여성들과 38%의 남성들은 다른 형태의 남성성이 존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We believe 광고를 지지하는 이유다. 면도기를 파는 회사가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그 제품을 쓰는 사람들, 고객들에게 무엇이 더 나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에게 이게 최선이야 라며 제품과 광고를 던져주던 시절에서 벗어나, 어떤 것이 더 나은가를 진지하게 묻는 것은 지금껏 보아온 질레트의 방식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고 더욱 증오한다. 그리고 결코 광고를 내릴 생각이 없는 질레트의 입장은 분명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모든 연령의 남성들이 최선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기구에 기금을 향후 3년간 백만불이나 내기로 한 회사의 결정은 브랜드가 진짜로 생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확인케 한다.


질레트 사례의 한 가지 특징적인 지점은 브랜드 구매 타겟의 확대라는 부분이다. 여성들은 평생을 남성보다 더 꼼꼼한 제모나 면도를 요구받으며 제품을 사용해 왔고, 그래서 면도에 갖는 생각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게다가 Pink tax로 인해 여성용 제품은 항상 가격이 훨씬 비싸고, 기능은 남성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싼 물건을 꾸역꾸역 팔아먹는 질레트라는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이 광고로 바뀌게 되면서, 질레트는 향후 더 비싼 물건을 자주 구매하는 고객들을 적극적으로 폭넓게 포섭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확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Edeka 역시 고객층의 확대나 옹호그룹의 확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인식의 개선이나 확장이라는 다소 포괄적인 혜택에 비해, 질레트의 고객층 확장은 확실히 명확하다.





브랜드가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 싶다면 진정성 있게 준비하고 행동으로 증명하며 끊임없는 도전에 대비하는 수 밖에 없다. 슬쩍 발가락만 담궜다가 내뺄 생각을 하면 안된다. 시작한 이상 진지하게, 확고한 입장과 철학으로 끊임없이 소통하며 한발짝씩 나갈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완벽은 없으므로 간혹 실수도 하고, 틀리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나아가는 것이 브랜드가 고객과 사회와 공존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하는 다양한 채널을 목적에 맞게 잘 선택해 사용해야 한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종종 격한 논쟁의 장이 되고, 사실의 왜곡과 악의적인 선전선동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소셜미디어는 브랜드가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채널이다. 물론 가장 격한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전쟁에 이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전투를 치르고 이길 수 있다면 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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