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본질 살리기
연필을 깎아 기분 좋게 쓰다 보면 어느새 뭉툭해집니다.
예쁜 글씨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으면 우리는 연필을 깎거나 다른 잘 깎은 연필을 사용합니다. 짜릿한 필기감을 즐기고 싶고, 멋진 글씨를 쓰고 싶다면 연필심이 뭉툭해 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계속 깎고 또 깎아야 합니다.
브랜드가 엣지가 있다는 것은 잘 깎은 뾰족한 연필로 글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종이 위의 서걱거리는 소리와 찌를듯한 연필심이 종이 표면과 닿아 만들어 내는 떨림은 브랜드의 독특한 차별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필이 닳아서 뭉툭하게 글이 써 지면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도 힘들 뿐더러 멋있어 보이기도 힘든 것처럼 브랜드도 원래의 특징이나 차별점을 잃으면 멋있지도 않고, 뭘 이야기하는 브랜드인지도 모호해 집니다.
뭘 어떻게 써도 번지고, 날카로운 획은 그을 수도 없고, 종이와 닿는 연필심의 면이 너무 넓어 종이표면을 긁고 지나가며 내던 시원한 소리며 손끝에 전해지던 미세한 떨림도 사라진지 오래라면 어떻게 할까요?
날카롭고 엣지있는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고 연필 탓을 하며 속상해 할 것이 아니라, 칼을 들고 연필을 깎으면 됩니다. 연필을 깎는 행위는 불필요한 것들을 벗겨내는,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연필심을 둘러싼 나무가 깎여 나가고, 연필심도 갈려서 다시 뾰족해 지는 동안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꽤나 책상이 지저분해 져야만 연필은 다시 뾰족해 집니다.
그런데 연필은 예쁘게도 아무렇게나도 깎을 수 있습니다. 연필심만 뾰족하다면 마구잡이로 깎아도 글자를 쓰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그 못난 연필을 쥐고 있는게 싫지 않다면 말입니다.
브랜드를 둘러싸고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벗겨 나가는데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급하다고 마구잡이로 깎아 내다보면 연필심은 다시 뾰족해지겠지만 아름다운 나뭇결이 주었던 시각적 즐거움은 예전처럼 누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대충 깎은 연필은 다음번에 깎을 때 여간 불편한게 아닙니다. 삐죽삐죽 깎아두면 다음에 또 연필을 깎아도 그 못난 모양새를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예쁘게 깎아내야 보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 연필이 되는 것처럼, 브랜드 리뉴얼, 리바이털 작업을 하려면 반드시 안팎을 아우르는 본질에 동시에 충실하게 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자신의 브랜드가 얼마나 닳은 연필인지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