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의 중요성
우리집 앞에는 스타벅스와 동네 카페가 나란히 있다. 나는 주로 스타벅스를 간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스타벅스 카드가 있기 때문에 정도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간다). 하지만 바로 옆의 비어있는 동네 카페를 보며 사람 많은 스타벅스로 가는 이유는 사실 그것 하나만은 아니다. 내가 꼽을 수 있는 여러 요인들과 미처 헤아리지도 못했던 이유들까지 복잡하게 얽혀 열에 아홉 번은 스타벅스를 간다. 그리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 동네 카페는 붐비는 경우가 거의 없고, 스타벅스는 아침 일찍 가지 않는 한 거의 항상 붐빈다.
그렇다고 우리집 앞 스타벅스가 특별한 지점은 아니다. 그저 스타벅스라고 하면 떠올리는 딱 그만큼의 기대치를 항상 충족시키는 곳이다. 동네카페 역시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그 동네 사람 대상 장사를 하는 곳이다. 두 곳 모두 어디에서나 있음직한 모습과 메뉴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왜 스타벅스가 항상 압도적으로 잘 될까?
우선 스타벅스는 건물의 세 개 층을 쓰는데, 1층은 창가의 바깥을 보게 된 높은 의자를 둔 자리만이 있다. 2층은 가운데 넓은 공용탁자와 창가 자리가, 3층은 담소 나누기 좋은 푹신한 소파들이 중앙을 차지하고, 창을 바라보는 1인용 소파들이 있다. 일을 해야 할 때는 1층이나 2층을, 책을 읽거나 멍때리고 싶을 때는 3층을 간다. 1층의 주문 카운터 뒤로 다양한 계절메뉴나 이벤트 메뉴들이 있고, 베이커리윈도우에는 익숙한 것들과 새로 출시된 아이템들이 함께 자리한다. 늘 마시는 것을 마시고, 비슷한 빵을 선택하지만 새로운 메뉴나 한정 메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커피는 그란데로, 주전부리 하나 정도 더 하면 만원 좀 넘는 금액으로 떳떳하게(!)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배가 고파지면 자리에 노트북이며 가방을 두고 지갑이랑 핸드폰만 들고 근처 분식점을 간다. 라면에 김밥을 먹거나 떡볶이에 만두를 먹고 온다. 물론 그 동안 내 자리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파트너들이 딱 기억하진 못할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거기 오래 앉아 있어서 내 얼굴을 익힌다해도 나에게 왜 이렇게 오래 앉아 있느냐거나 하는 말을 건네지 않을 것임도 확신한다.
늘 적당한 맛의 커피와 완벽한 화이트노이즈가 되어 주는 음악, 시간에 따라 파트너들이 조심조심 내리거나 올리는 블라인드로 햇빛과 조도가 적당히 조절되고 나른할 정도의 편안함에 빠진다. 그게 집앞 스타벅스의 여유다.
바로 옆의 동네 카페-S라고 하자-는 1층에 있다. 나무를 사용한 인테리어는 편안함을 주는 한편 다소 촌스럽다. 가구의 선택도 결코 디자인은 아니었을것 같은 것이 전체 분위기와 따로 논다. 테이블마다 전원 연결이 가능하고, 거리를 향해 난 통창면에는 스타벅스처럼 좁고 긴 자리를 배치해서 밖을 보며 앉을 수 있게 했다. 홀은 거의 전부 4인석인데 테이블간 간격은 꽤 좁다. 그래도 밖에서 보면 아기자기해 보이고, 안에 있으면 아늑한 느낌은 든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은 스타벅스 톨 사이즈와 거의 비슷하다. 동네 주민 할인이 있어 좀 싸게 마실 수는 있는데, 커피의 양은 스타벅스 톨사이즈의 3분의 2이고, 컵 사이즈는 하나 뿐이다. 커피는 주인의 취향인지 연하고, 향이 강하거나 독특하지도 않고, 그저 커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샷 추가시 어떤 상태가 되는지는 판단 불가. 그렇게 주문해 볼 만큼 자주 가 보지 않았다. 커피는 항상 납작한 커피쿠키와 함께 나온다. 그리고 커피를 베이스로 한 수십 가지 음료 이름이 카운터 뒤편 칠판에 빽빽하게 쓰여 있다. 빈틈도 없이 쓰여 있어서, 메뉴를 탐색하기도 전에 포기한다.
음악은 유행하는 가요와 올드팝을 넘나든다. 시끄럽진 않지만 멜론 최신곡 100곡 재생해 놓은 것 같은 때도 있고, 지하철 CD판매상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여기서도 한참 있다가 짐을 두고 잠시 밥을 먹으러 나갔다 오기도 한다. 왠지 내 가방이 잘 있을지 가끔은 불안하기도 하고, 주인이 뭐라고 하는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사람도 많지 않아서 나가라고 할 분위기는 아닌것 같지만, 내 일거수 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어서, 짐을 두고 밥 먹으러 가는거군! 하고 알아차릴 것 만 같다.
카페 S가 커피업계의 티라노사우루스 스타벅스 바로 옆에서 경쟁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아무리 승승장구해도, 동네 카페의 장점과 강점은 충분히 발휘할 만 하다고 생각되는데, 카페 S는 열이면 열 다 지는 선택을 하고 있다. 불행히도 카페 S는 동네에 있으니까, 그리고 스타벅스에 자리가 없는데 어딘가 들어가야 하니까 가는것 뿐이다. 현재까지는.
동네 카페 S는 늘 비어 있는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에 좀 안타깝다. 그러나 커피를 마셔보면 늘 한 두 테이블밖에 차지 않는것이 당연하다 생각된다. 로스터리카페까지는 아니라도 나름의 풍미와 맛이 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인스턴트 커피를 탄 것보다 조금 나은 커피를 몇천원에 마신다는건 너무 아깝다. 게다가 할인을 받지 않으면 스타벅스와 비슷하게 지불해야 하는데, 커피 양은 훨씬 적다. 할인을 받았다해도, 그보다 더 싼 가맹점 커피들의 양을 생각하면 역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저가 커피 가맹점의 커피맛과 별 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양이라도 푸짐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본전 생각-가성비를 따지게 된다.
뭐니뭐니해도 카페의 본질은 커피를 파는 것이다. 메뉴의 수가 많은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커피를 사는 사람들이 지불한 돈에 합당한 가치를 얻었다고 만족할 만한 맛과 양, 서비스를 해 주고 있는가? 그게 1차 경쟁 포인트다. 그런데 과연 카페 S는 스타벅스의 커피만큼 늘 일관된 품질에 충분한 양의 커피를 주는가? 주문하고 지불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주인 또는 스탭의 전문성과 자신감은 어떤가?
그 곳의 커피는 가격에 맞는 가치를 주지 못한다. 스탠다드로 자리 잡은 양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맛과 향도 최저점을 겨우 면한 수준이니 스타벅스만큼 돈을 내기가 아깝다.
품질도 서비스도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인지도와 호감도 높은 스타벅스 바로 옆에서 경쟁하게 됐다면, 최소한 커피(메뉴) 퀄리티 만큼은 비슷하기라도 해야 할텐데, S의 커피는 너무 형편없다.
동네 카페 S에는 가치제안이 없다.
으례 동네카페라는 정체성에서 기대하게 되는 편한 사랑방도 아니고, 세련되고 모던한 커피전문점도 아니고,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하는 장점들도 없는데 굳이 그곳을 가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카페 S의 가치제안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스타벅스를 가지 않고, 그곳을 가야할 단 하나의 강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전달할 만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누가 고객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치제안이란 그 곳의 고객들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S의 고객은 누구일까? 누구에게 가치를 준다는 것인지 정해져야 무슨 가치를 줄 지 결정할 수 있다.
동네 주민과 스타벅스를 못 간 1회성 손님들? 둘 중에 어느쪽에 포커스를 해야할까?
만약 타겟이 배후 아파트 주민이라면, 스타벅스가 아닌 그 곳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가 뭘까?
스타벅스가 주지 않/못하는 어떤 것인데 고객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다른 차원의 의미를 주는 것, 그래서 갖고 싶은 무엇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 집 아닌 내집의 쾌적함과 즐거움으로 정의한다 해 보자. 내 집이 아닌 내 집같은 편안함과 쾌적함이란 대체 뭘 말하는걸까? 어떤 인테리어이고, 서비스인가? 어떻게 이미지화 되는걸까?
내 얼굴과 취향을 아는 주인이나 종업원이 있어 늘 드시는 카페라떼 드려요? 라고 물어보고, 내 집에서 머무르는것 같은 편리함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되면 어떨까. 구체적으로는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무언가-그 곳에만 있거나, 확실히 더 맛있는-를 먹을 수 있고, 뭘 해도 적당히 잘 맞는 편한 의자가 있고, S만의 커피 맛이 항상 보장된다. 아, 별거 아니네? 생각할 수 있지만 실행은 또 다른 문제로 어렵다. 수 많은 동네 카페가 그냥 어정쩡한 동네 카페로 끝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정의한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게다가 메뉴판을 빽빽하게 채운 수 많은 커피 메뉴와 그만큼 많은 다른 음료 메뉴들은 대체 이 곳이 뭘 잘하는 곳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저렇게 많은 메뉴를 온갖 종류를 다 한다고 하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스타벅스도 맛있는 메뉴와 맛없는 메뉴가 있다. 최소 서너명이 만들고, 정기적으로 메뉴가 바뀌는 스타벅스도 못하는 메뉴가 있는데, 1년 365일 저 메뉴를 다 맛있게 할거라는 상상은 솔직히 안든다. 최소한 아메리카노라도 맛이 괜찮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히려 하게 한다.
무엇이 사람을 카페에 잡아두는가?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고, 결핍이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어떤 것들이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인다.
스타벅스는 왜 베이커리 메뉴를 확대하는걸까? 카페라는 공간에 오래 머무르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공간의 수익성을 위해서 먹거리 메뉴는 필수다. 장시간 체류 고객이 많아지고, 그를 위한 시설-전원이라던가, 스터디용일 법한 공간이나 큰 탁자 등-을 설치하게 되면 더더욱 회전율은 낮아지고, 1인당 객단가는 높아져야 수익을 낼 수 있다. 커피같은 음료만으로 그걸 메우기는 불가능하다. 어차피 오래 머무를거라면 공간 안에서 다양한 소비를 하게 만들어 주는게 낫다. 스타벅스에는 샌드위치도 있고, 케익도 있고, 그 유명한 옥고감도 있고, 바나나며 쿠키 등등 왠만큼 요기가 되는 먹거리가 많다.
한 번은 스타벅스에 자리가 없어 카페 S에 갔는데, 거기는 먹을거라곤 함께 주는 조그만 쿠키 한조각이 먹을거리의 전부였다. 좀 오래 머무른다면 배가 고플수 밖에 없고, 오래 있다보면 눈치도 보이는데 따로 주문할 메뉴가 없는 것이다. 다시 커피나 음료를 시키면 되긴 하지만, 배고픔을 해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카페 S 앞을 지나다니며, 가끔 들러 음료를 사면서 느낀 것은 그곳은 새로운 가치제안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단순히 오퍼레이션 엑설런스를 올리기만 해도 훨씬 나아질 곳이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수십종이나 되는 메뉴의 절반 정도를 과감히 없애고, 이거 좋아할거야 확실히! 라고 느껴지는 자신감 있는 메뉴 위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 너무 많은 선택으로 인해 아무것에도 확신과 신뢰를 못하는 고객의 갈등상황이 싹 정리될 것이고, 원재료 보유면에서도 훨씬 부담이 줄어든다.
대신 커피 원두는 최소한 스타벅스 급으로 사용해서 맛을 제대로 내야 한다. 누가 바로 이웃에서 경쟁하고 있는지 뻔한데 고객들이 비교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면 오만이다.
퀄리티는 같더라도 가격은 좀 메리트를 줘야 한다. 브랜드 값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스타벅스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비슷하거나 조금만 더 싼 가격에 제공해서 브랜드 인지도나 가치가 전혀 없는 동네 커피집의 불리함을 상쇄한다.
베이커리 메뉴를 도입하고, 한끼 식사가 될 법한 메뉴를 한두가지 개발하거나 소싱해 온다. 모든 것을 다 혼자 할 수는 없고, 좋은 것을 제대로 가져다 주는 것도 경쟁력이다. 스타벅스도 자체 베이커리가 아닌 소싱을 한다. 오랜 시간 머무르려는 손님들은 음료와 먹거리를 같이 주문할테니 매상도 오를테고, 어쩌다보니 오래 있게 된 손님들도 밖에 나가 식당을 찾는 더 큰 수고로움을 덜고 카페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편리함과 만족감을 같이 느낄 수 있다. 추가 주문시 5% 할인 같은 귀여운 프로모션이 더해 진다면, 느낄 가치는 훨씬 커질 것이고.
*덤으로.. https://www.timeout.com/london/food-drink/londons-best-cafes-and-coffee-sho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