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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Sep 17. 2018

충고하지마라

충고와 조언의 무쓸모함에 대해

이래야 한다, 저러면 좋겠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한테 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가지 이유에서 조언이든 충고든 가급적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대가 정말 원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 줘야 하는 상황이라도 가급적 말을 아끼고, 보편적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내가 꼰대가 됐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지 못하는 인간의 특성 때문이다.



상황이 다르고 진실은 가려져 있다


조언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평소는 아닌척하지만 꼰대스러움을 풀풀 날리며, 기성세대 가치관을 은근히 장려, 권유하기도 하고, 내 생각이 답인것처럼 포장해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기저에는 나의 “선한 의도”가 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말기를, 보다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눈 앞의 위험을 알아보고 피해가기를 바래서다.


그런데 나의 선한 의도는 내가 겪은 상황의 특수성에서 나온 특정한 시대와 상황에서만 작동할 조언이 주는 한계를 넘지 못한다.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듣는 입장인 내딴에는 다 이해되고, 결과까지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아주 다른 상황일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조언을 원하면서도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고, 조언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십몇년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본질에서 별다를게 없을거라는 전제를 수용해 그에 맞게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나 또한 본질은 같다는 전제로 상황과 사람의 차이점을 적당히 쳐 내고, 틀에 넣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니 결국 완전 틀린것은 아닌데 백퍼센트 믿으면 큰 일 나는 조언이 탄생한다.


설령 조언 자체의 퀄리티가 아무리 좋아도 생각의 힘과 시간과 돈의 리소스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들은 이야기를 써먹어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대체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그 두가지가 부족하다.



ear candy

 

또 하나 최근 깨달은 이유가 있는데, 첫번째 이유보다 더 근본적이고 강력하다. 인간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부족한 점이나 잘못을 지적받으면 먼저 감정이 상하고, 상대가 나에게 무슨 판단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자신이 덜 떨어진 인간으로 간주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상대의 조언 중 어떤 내용은  치부를 들추거나 폐부를 찌른다. 그 결과 상대가 나에 대한 악의가 있음을 자동적으로 예상한다.  그 일이 반복되면 상대의 얼굴만 봐도 또 무슨 싫은 소리를 하려는건가 하고 부담되기 시작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충고라도 반복되면 듣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 보호본능이 발동해 외부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행위가 거북한 상대를 멀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공격적으로 반응하면 상대와 싸우게 되는 것이고.


충신이 역모의 주체가 되는 이유가 다 그것이었다.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군주의 부덕함을 비난하는 것이고, 끊임없는 직언은 지속적으로 모자람을 일깨우는 것이 되는 것과 같다.


충언을 하고 사약을 마신 충신들처럼 기업에서도 직언과 충언을 하면 미움을 산다. 저 인간은 왜 사사건건 부정적이냐는 오명을 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해고나 퇴사 당한다. 그런 선택을 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회사에 사람이 넘쳐도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어쩌면 조언이나 충언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끊임없이 교정하는데 너무 큰 리소스가 들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듣는 것 조차 에너지가 필요하고, 들은 것을 적용하려고 머리를 쓰거나, 실제 행하는덴 에너지와 물리적 리소스가 함께 꽤나 든다.

가뜩이나 힘든데 더 큰 힘을 쓰라고 옆에서 계속 찌르면 싫은건 당연하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 보호본능을 발휘해 그 사람을 멀리하고,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왜 듣기 좋은 말 해 주는 사람이 득세할 수 밖에 없는지, 백퍼센트의 진심은 왜 오해받는지 이제 조금 깨달았을 뿐.

이 글도 그래서 다 쓸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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