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와 가치 사이

Value or Money?

by 크리스탈

고등어백반을 먹으며 가성비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봤다.
식당가에 있는 한 브랜드 식당의 고등어 한상은 14,000원, 푸드코트의 고등어백반은 10,000원.
4천원이나 차이가 나네! 하며 푸드코트에서 주문한 자신을 매우 칭찬하다가 문득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기 위해 들이는 모든 노력과 상황이 4천원의 절약을 정당화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차라리 4천원을 더 쓰고 식당에서 먹는게 낫지 않았을까?

푸드코트 시스템은 요리를 제외한 전 과정을 소비자에게 요구한다. 카운터에 가서 직접 주문하고, 누군가와 어쩌면 민망하게 마주 앉아야 하기도 하는 빈 자리를 찾아 앉고, 진동벨이 울리면 직접 가서 수저를 챙겨 밥쟁반을 받아 온다. 시끌벅적을 넘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주위에 신경을 끄고 먹기에만 열중하다보면 고등어는 앙상한 등뼈를 드러낸다. 다시 쟁반을 챙겨 반납대로 가져다 놓고, 물 한잔 마시고 티슈로 입을 닦고 나온다.
처음의 기대가 밥 숟갈 한 번 뜰 때마다 사라지고 식판을 반납한 뒤 돌아나오면 밥을 잘 먹었다기 보다 잘 때웠다고 느껴지며 살짝 허무할 때도 있다.

보통의 식당에 갔었다면 내가 할 일이라곤 주문뿐, 가져다 주는 밥을 먹는게 전부다. 지불을 마치고 나오면서 ‘어쩌면 이 정도 음식이면 차라리 푸드코트에서 먹는게 낫지 않았을까, 괜히 폼 재고 여유부린다고 돈을 더 쓴거 아닌가’ 하며 의문같은 후회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비교는 밥상의 품질이 비슷하다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것이다. 고등어의 크기와 맛, 반찬 가짓수와 맛, 따뜻하고 쫀득하게 씹히는 쌀밥의 맛 등이 비슷하거나, 살짝 푸드코트 음식이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다. 내가 품을 더 들이고, 음식의 양과 질은 조금 못하지만 그만큼 돈을 덜 내니까! 라고 자기합리화 할 수 있는 정도에서 사람들은 가성비와 가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가성비와 가치 사이에서 항상 갈등한다.
가성비의 이면에는 우리의 수고나 인내, 포기가 반드시 수반된다. 그리고 그게 얼마이면 적절한 것일지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슬프게도 가성비란 물러설 수 없는 선까지 후퇴한 선택일 때가 많다. 한동안 유행했던 인간사료란 것을 보면 최소한의 존엄을 간신히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수준에서 가성비를 구성하는게 의외로 놀라운 일도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인간사료’ 네이버 이미지 검색


그래서 값어치를 못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최고의 가성비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나은 경우도 많다.


안타깝게도 가성비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정도의 가치를 느끼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적정 정도의 교환가치란게 쌍방이 늘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하라는 성경 말씀도 있지만 인간의 욕심은 현재의 이익에 눈이 먼다. 그래서 가치없는, 가치를 못하는 밥을 팔고, 물건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지불하는 쪽에서는 항상 훨씬 큰 것을 받아야 한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만큼 냈으니 난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한다! 라는 권리의식이고 이게 낮은 인권의식과 결합하면 갑질이 된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제품은 소위 가성비 “갑” 제품이었다.

미국산의 비싼 장비를 살 수 없는 혹은 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싼 가격으로 장비를 사서, 밤낮으로 돌려 다운타임을 최소화해 돈을 벌었다. 그 덕분에 내구성이 나쁘지 않은 제품임에도 2-3년 지나면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그러면 딜러와 회사에 난리를 쳐서 AS를 받는다. 그렇게 몇년을 더 쓰고 돈을 제법 벌고 장비는 털털거려도 여전히 돌아가면 중고시장에 장비를 내놓고 새 제품을 구매한다.

원래 내구성이 최상의 장비는 아니었던 탓에 잔존가지를 미국산 유명제품만큼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밤낮으로 장비를 돌려 얻은 수익이 크므로 낮은 잔존가치가 크게 아쉽지는 않다. 또 제품을 사고, 그렇게 돈을 벌고.. 반복되면 고객은 부자가 된다.


그런데 슬픈 것은 돈을 번 고객들이 미국산 또는 스웨덴산 장비로 갈아타 버리는 것이다. 졸지에 오래오래 관리해 온 고객을 잃으면 매출 타격은 물론, 배신감도 크다. 밀림을 헤치고 추위를 무릅쓰고 장비 수리하러 가서 몇날 며칠 고생했던 일들이 모두 허망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많은 고객들이 만족하며 충성고객으로 남기도 하고, 지인이나 주변에 우리 장비를 추천해 주지만 나간 자리 안다고 사라진 고객은 늘 원망스럽고 아쉽고.. 그렇다.


물론 그 장비가 완벽하진 않다. 가성비 갑이란 것은 해당 가격 범위 내에서 최고의 성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므로 스트레치할 수 있는 범위가 무한대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장비가 줄 수 있는 가치, 뽑아낼 수 있는 가성비 이상을 바라는 고객들을 붙잡으려면 더 큰 오퍼를 줘야 한다. 더 싼 가격이다. 그래야 장비의 가치와 가격 갭이 더 벌어지니까. 보통은 가격할인이 꽤나 들어가고, 다른 조건들을 줄줄이 제공해야 한다. 과연 더 큰 할인을 제공해서 그 고객을 잡는게 맞는걸까?


비싼 가격에 더 나은 생산성, 퍼포먼스를 원한 고객을 가격으로 포기하게 하면 끝이 그닥 좋지 않다. 기대하는 바가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시점에 설득은 했지만 장비를 사용하면 할 수록 역시 싼 맛에.. 라는 인식이 강화된다. 다음번엔 공짜로 주지 않는 한 우리 제품을 사용하게 할 수 없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브랜드란 허상이다.



그래서 제품의 본질적 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격과 품질의 밸런스를 벌리면서, 절대적 기대치에 더 가까와지는 것만이 가성비라는 가치제안을 유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 부분이 많이 간과된다.

우리 제품이 얼마니까 이 정도면 살거야, 이 가격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은 없어 라는 자신감 또는 오만함은 더 자본이 풍부한 플레이어를 만나는 순간 가루가 된다. 가격은 가장 중요한 툴 중의 하나인 동시에 가장 쉽게 허물어지는 성이다. unless, 가치를 지속 높여가지 않는다면.



선진 브랜드들에 잘 하는 지점이 거기다. 가격만 비싼 제품을 자랑하지 않는다. 팔로워들이 따라가기도 바쁠 만큼 제품개발을 하고 제품력을 사용성을 개선하고 더 새롭고 가슴에 깊이 뿌리내릴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가만히 1등은 독점시장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오늘날 이런 상황은 발견하기 어렵다. (공산주의국가나 배급경제에서만 가능하다)


팔로워가 따라가느라 힘들어 하는 중에 operation excellence를 높여 가격까지 내려버리면 팔로워가 질식사 당하는건 시간 문제다. 실제로 그 일이 이전 직장의 주력 시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상당기간 고전을 했다.


가성비의 근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무게추가 기우는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만 이리저리 바뀌는 환경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고, 매출이던 이익이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나의 고등어백반이 절약한 4천원에서 플러스마이너스 어디쯤에 있을지 생각해 봤다. 오늘 저녁의 가성비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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