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16일차
아침 2.0
나무목걸이 1.5
숙소 5.0
시트커버 1.0
물 0.5
슈퍼 11.43
밤새 요리사 아저씨 집에서 술 먹다 새벽에 알베르게에 돌아온 미현은 10시쯤 도착한 오르니요스 다음 마을인 온타나스에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주저앉았다. 따라갈게요라며 알베르게로 들어갔는데 가끔씩 헤어졌다 만나는 것도 괜찮은 듯.
카스트로헤리스 마을 입구에서 나무십자가를 깎아서 파는 트럭을 만났다. 한국에서 매일 나의 불평 카톡을 받아 주는 착한 동생이 생각나서 하나 샀다. 순례자 십자가는 일반적인 십자가 모양과는 조금 다르다. 위가 장식적으로 동그랗고, 아래는 뾰족한데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 보면 화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의 가슴 위에 있는 그 십자가이다. 그는 원래는 귀족 신분이 아니었지만 펠리페 4세의 총애를 받아 산티아고 기사단 작위를 받고, 그림에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며칠 전 알베르게에서 잠잘 시간에 너무 심하게 떠든 사람들에게 분노를 참지 못해, 베드벅 물려 버리라고 마음속으로 저주했는데, 어젯밤 오르니요스에서 내가 물렸다.
이 길은 가끔씩 매우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낸다. 신의 은총이 깃든 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엄한 꾸지람도 있는 길인 듯. 아무리 미워도 그런 바람은 나쁜 것이기에 악한 마음을 먹은 내게 그 벌을 먼저 내린 것 같다.
베드벅 물린 자리가 네 곳인데 전부 몸의 왼쪽만 물렸다. 물집도 왼쪽만 생기는데 왼쪽이 수난이다.
입었던 옷 전부 다 빨고 침낭 말리고 난리를 쳤다. 약국 가서 보여주니 약사가 음... 하며 비싼 연고를 하나 주었다. 자주 바르란다. 이제 앞으로는 이런 일 없기를.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어제 만난 요리사가 싸준 고춧가루 들어간 또띠야데파타타를 늦은 점심으로 먹었는데 맛있다. 요리사가 맞긴 한 듯 ㅎ 오늘 식당 오픈은 예정대로 했을까?
전 세계 인구가 60억이라면 부의 순서대로 1부터 60억 번이 매겨지겠지? 그렇다면 60억 번째는 지금 막 태어난 아기일까? 막 숨이 끊어지는 사람일까? 아기는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막 생명을 내어놓는 사람보다는 부유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마음의 부의 순서는 물질적 부의 순번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누구보다 더 행복하다고 잴 수 있을까? 그런 이유로 불행 또한 더 불행하고 덜 불행하고를 따질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될 때, 불평을 한다고 더 불행해지지도 덜 불행해지지도 않겠지만 불행감은 깊어지고 더 불행한 상태로 쉽게 빠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 잠자리가 불편해서, 미현이 오지 않아서 잠을 설쳤더니 힘들다. 제대로 잠을 자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 잠이 필요한 건지 여기 와서 더 절실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