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 17일차
아침 5.6
점심 8.0
빨래 2.0
숙소 8.0
식품 2.95
어젯밤 아래쪽 침대에서 섹스하는 커플과 코골이 세 사람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자고 새벽 5시 되어서야 겨우 한 시간 반 잤더니 멍하다. 1시간 반 이상의 xxx 생방송은 정말 온 방의 사람들을 다 힘들게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 다들 투덜거리며 나가버리는 것. 아.. 여기까지 와서 그럴 일인가.. 여기 순례길인데..
7:10부터 걷는데 바로 산! 이 나와서 기절, 겨우 겨우 네발로 기어 넘어서 다음 마을 도착했다.
그리고 바에서 샐러드를 한술 뜨는데 미현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오는 모습이 보였다! 겨우 하룻밤이었는데 너무 반가워서 샐러드 접시 엎을 뻔했다.
점심은 프로미스타 직전 마을인 보아디야에서 먹었는데 냉동식품인 듯한 파스타에 콜라 한잔 시켰다가 파스타는 반 이상 남기고 콜라만 마시고 왔다. 가끔씩은 먹지 않는 게 더 나은 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
날씨는 어제보다 더 덥고, 뒤꿈치 물집이 주는 고통의 감각은 한 발 한 발 더 생생해지고, 생리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 불편하고 참 힘든 길을 미현과 함께 꾸역꾸역 걸어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꾸역꾸역. 맞다. 이 말이 딱 맞는 날들이 있는데 오늘이 그날.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프로미스타에 도착해 쉬고 있다는 H가 엔젤과 얀-착한 이탈리아인 쉐프와 수레 끌고 순례하는 네덜란드 할아버지-을 비롯한 다른 일행 마중 나와 있어 반갑게 만났다.
미현은 온타나스부터 걸어서 총 37킬로 정도를 걸었는지라 너무 피곤해해서 세탁기에 빨래 같이 하기로 했다.
저녁은 슈퍼 가서 과일이나 좀 사 올까.. 어제 인스턴트 빠에야가 소화가 안돼 속이 너무 불편하였던 데다 뭔가 느끼한 거 먹고 싶지가 않다. 이럴 때 하늘에서 신라면 하나만 뚝 떨어지면 좋으련만. 아, 그래도 못 먹는구나.. 오늘 묵는 알베르게에는 주방이 없다.
아까 밀밭 사이 걸어오다 여행 가신 부모님 생각을 했다. 여행상품 언뜻 보니 우리 부모님은 여행자보험도 못 드는 연세.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사고 나더라도 아무 보상도 못 받을 거 알면서 여행을 가야 하다니 공정거래법에 저촉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새 언제 그리 늙으셨나, 나 모르는 새 세월을 맞으신 것은 아닌데.. 북유럽여행이 두 분 마지막 여행이진 않겠지, 어제 들은 엄마 목소리가 마지막이진 않겠지 생각하며 걱정하다 눈물 날 뻔했다. 두 분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고, 부모님이 내 걱정 덜 하시게 살아야 할 텐데 항상 정착 못하고 떠도는 딸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니 죄송하기 그지없다.
수비리 가는 길에 만났던 모니크와 앙드레 부부를 다시 만났고, 그들과 페이스북 주소를 주고받았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 근처에서 미용실을 발견한 앙드레는 그다지 길지도 않은 머리가 거슬린다며 빡빡머리를 다시 밀고 나왔다. 들어갔다 나오는데 5분 걸림.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