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미스타-카르리온데로스콘데스

6/29 18일차

by 크리스탈

아침 3.5

커피 1.3

침낭,속옷 55.30

비누통 1.95

숙소 5.0

점심 16.0

수퍼 3.01



6시 출발, 첫 마을에서 식사. 두 번째 마을 알베르게에서 카페콘레체 시키고 쉬며 화장실 감. 화장실은 누추했으나 길에서 해결하지 않는 게 어디냐며 감지덕지. 많은 것에 욕심을 버리게 되는 길. 그리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얼마나 적은지 매일 깨닫고 있다.

어제밤 피곤했는지 잘 잤지만 베드벅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또 약간씩 물렸다. 결국 마을 도착하자마자 침낭을 새로 샀다. 그리고 어제 산 약은 잘 듣는다. 수포도 발진도 많이 가라앉았다.


카미노 엔젤 오토(본명은 오타비오인데 오토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가 저녁을 차려주었다. 오토는 수레를 끌고 순례 중인 네덜란드 할아버지 얀의 호흡기를 꽂을 수 있는 전원이 있는 1층 침대를 확보하기 위해 알베르게에 항상 먼저 와서 알아봐 주고, 그 자리가 이미 차 있으면 사정 설명을 해서 침대를 확보해 준다. 가끔씩 같이 걷고 있는 8명이나 되는 일행을 위해 식사를 만들어 주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 도와주는 마음 씀씀이가 착한 사람이다. 처음 만났을 때 길거리 개에게 물을 주는 모습을 보고 엔젤이라고 부른게 굳어져서, 나와 미현이 엔젤! 하고 불러도 이제 씩 웃으며 대답해 준다.

엔젤이 샐러드에 파스타를 저녁으로 만들어 12명이 함께 식사를 했다. 난 베드벅 때문에 빨래가 많아 마음이 급해 샐러드만 먹고 나서, 파스타는 안 먹겠다 하고 샤워하러 갔는데 엔젤이 내 몫을 남겨두고 상을 치우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챙겨 줄 줄은 몰라서 가슴 한 편이 찡했다. 그리고 식었는데도 파스타가 맛있었다! 역시 요리사 맞는듯. 그런데 요리사 관두고 다른 일을 찾는단다. 한국 와서 이태리식당 하라고 했더니 웃기만 한다.


오늘 온 알베르게는 수녀님들이 하는 곳인데 매우 친절하고 시설관리가 잘 되어 있다. 5유로에 불과한데다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웰컴드링크로 차도 주고 미사도 함께 드리며 저녁도 같이 한다. 마지막 순서는 수녀님들과 순례자들이 함께하는 노래다. 2층 방에서 들려오는 기타 소리와 노랫소리가 참 좋았다. 난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의미가 있는 사람도 많은 듯, 항상 Shared dinner 가 있는 알베르게는 북적거린다.


알베르게 도착할 즈음 한국에서 전화 왔는데 또 다른 헤드헌터가 한 생명보험회사 마케팅팀장 포지션으로 서류를 넣겠다고 한다. 지금 순례 중이라 8월 말에 들어간다니 화상이나 콜로 면접 볼 수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한다. 오기 며칠 전에 같은 포지션 다른 서치펌에서 연락받았을 때 그 헤드헌터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H 회사 마케팅팀장 오퍼도 왔으나 8월 말 귀국이라 하니 답이 없다. 이런 전화 받을 때마다 내가 여행을 잘 온 건지 못 온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될 거면 되는 거고 안될 거면 다 된 줄 알았다가도 어그러지는 법이니 내 것이라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는 오퍼만 하염없이 기다리며 아무것도 못 하고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 내 인생을 그렇게 낭비하면 안 되잖아. 이제 많아야 살아온 만큼 살 텐데.





걷다가 길을 내려다볼 때면 극락왕생 하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내가 밟고 지나가는 생명들, 누군가에게 밟힌 작은 생명들을 위한 기원인 셈이다.

그런데 문득 극락왕생이 뭔가 생각하니 극락에 가서 다시 생으로 돌아오라는 뜻 아닌가? 왕생은 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인데 새로운 생을 받는 장소가 극락. 그러려면 일단 극락에 가야 한다. 그런데 극락에 가기 위해서는 착하게 살아야 하고. 결국 끝없이 끊임없이 생을 누리고자 하는 유한 존재인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불교의 윤회사상이 품고 있다. 서양의 기독교리를 중심으로 한 사상은 생에 대해 일방향 단선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단순화하면 믿으면 천당, 불신지옥 끝. 천당에 가서 행복하게 살거나 지옥에서 영원히 저주받고 있을지언정 생을 다시 얻는 일은 없다. 그렇게 따지면 불교와 동양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종교인가 싶어 새삼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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