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리온데로스콘데스-테라디요스데로스템플라리오스

6/30 19일차

by 크리스탈

커피 2.4

이온음료 1.0

숙소 10.0

식사 6.7


며칠 째 진정되지 않고 있는 베드벅 사태로 침낭을 어제 숙소에 버리고 왔다.

상처에 물집 생기고 간지럽고 해서 괴로운 데다, 자다가 발이 너무 아파 몇 번이나 깬다. 걷는 게 쉽지 않다.

미현은 어제 깔창 바꾸고 발 아프다고 17킬로 후 첫 마을에 주저앉고 난 겨우겨우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몸도 발도 너무 아프다.

친구들은 그만 걷고 마지막 백 킬로 걸은 뒤 북유럽 가라고 하는데 사실 그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길을 그렇게 대충 걸어도 될 것인가 싶기도 하고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것에 자존심도 상하고.. 모르겠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몸이 극도로 피곤해지니 만사가 귀찮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기도 한다. 고행길을 원해 온 것이 아니란 거, 길을 걷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함께 도착한 앙드레와 바에서 한 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고 그의 마음과 생각을 보고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최고경영진에서 자문역으로 추락한 본인이 행복함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과 수련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고 명상으로 자신을 추슬렀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충격을 딛고 아무것에도 거리낌 없이 행복한 상태까지 도달한 그가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최근 내 상황에 비추어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앙드레와 헤어지고 혼자 차를 마시며 멍하니 있다가 문득 나를 몰아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발바닥이 부어서 20킬로도 힘들게 걷는데 굳이 26킬로를 걷겠다고 하는 게 정상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시작 전 내 일정은 40일, 하루에 20킬로 걷는 거라고 정해놓고 와 놓고는 시간이 촉박한 마냥 정신없이 사람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이건 경주도 아니고 기록 게임도 아닌데 왜 자꾸 많이 걷는데 집착하는지.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 못하고, 생각이란 배고픔과 아픔 두 종류의 것에 대한 것밖에 못하는 게 이 길을 온 목적은 아닌데 말이지.. 근데 온 목적이 뭐지? 오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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