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랑 싸우랴?
한참 피가 끓던 시절엔 내 생각이 전부 맞고, 최고이고 최선인데 그걸 설명해도 알아주지 않는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동료들이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다. 물론 조직은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시키면 하고, 하지 말라면 그만두었지만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최대한 어필하고 설명하고 때로는 논쟁을 하곤 했다.
임원들 중 일일이 반박을 하지 않지만 강압적으로 업무 지시를 하지도 않으며 유보적인 의견을 주시는 분이 간혹 있었다. 그런 분들은 대체적으로 내 전문성은 인정해 주시되 좀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는 정도의 피드백이 가장 강한 의견이었는데 내 입장에선 뭔가 시원하게 결정을 안내려주니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반대하지도 않고 내 의견을 최대한은 수용해 주셨으므로 뭐.. 이 정도라도 고맙지..라며 넘어가곤 했다.
세월이 흘러..두둥!.. 내가 그때 임원들이 하시던 역할을 하게 되니 그때 그분들이 하셨던 말씀이나, 취했던 태도가 이해가 간다. 일단은 “애”하고 일일이 다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다음엔 전체 상황을 고려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다른 부문의 상황을 지켜 볼 필요가 있는 것들을 판단할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고, 그분들의 보스-아마도 사장님, 회장님들-의 성향과 관심사를 감안해 조정할 필요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걸 전부 다 실무진들에게 설명을 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내가 있던 조직들은 대부분 대기업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사안의 영향이 엉뚱하게 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직구성원 하나하나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때로는 그러면 안되기도 한다.
이제서야 그런 것들이 슬슬 보이고, 화는 나지만 삼키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내 지난날들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들을 보면 한숨도 나고.
그래서 사람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존재란 사실을 또 절감한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