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없는 마케팅은 빈약한 스토리 때문이다
마케팅을 할 때 가장 먼저, 혹은 흔히 부딪히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막막함이다. 제품서비스의 강점을 이야기하거나, 고객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된다는 말은 어디서나 듣는 만큼 문제 제기와 해결이라는 공식은 신선도가 쉽게 떨어진다.
그러면 소위 잘되는 브랜드를 벤치마킹해 본다. 그런 브랜드들은 제품서비스를 문제해결 공식으로 풀어낸 것 외에도 브랜드 성격이나 분위기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소위 브랜드 스토리텔링이 ‘딴딴한’ 경우인데, 내용을 보면 어려워 보이지 않고, 우리 브랜드에는 할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막상 쓰려고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써 놓고도 아무도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 관심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걱정이 된다. 이런 불안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누가 시시콜콜한 브랜드의 속사정을 다 알고 싶어 하겠어?’라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조직 내부의 반응이다. 재미도 없는 이야기로 고객을 더 지겹게 만들거나 이탈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분위기가 보이면 위축되고 포기하게 되고, 덕분에 브랜드 스토리텔링은 어마어마한 소설의 영역이 되고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이런 상황은 비단 스타트업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브랜드는 모두 브랜드 스토리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존재하지만 깨닫지 못하고, 수집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기도 하고, 단기 광고캠페인으로 생각하고 매번 다른 이야기를 하는 브랜드들도 허다하다.
메시지의 부재 혹은 혼란은 마케팅의 출발점이 어딘지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핵심은 무엇이 되었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가 다음 이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든, 엉성하고 구멍이 숭숭 난 이야기든, 이야기에는 교훈이 있다. 이것이 브랜드가 고객에게 하고 싶은 말, 약속이다. 제품서비스에 대한 궁금증의 해결이든, 브랜드의 성과와 실패의 고백이든, 메시지는 항상 브랜드의 약속이다.
브랜드의 약속을 고객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이야기, 브랜드 스토리다.
어떤 이야기들이 브랜드 스토리의 소재가 되는지, 어떤 원칙으로 작성해야 하는지 매우 복잡한 방식과 기준들, 공식들이 많은데, 그에 앞서 누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브랜드 스토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호기심이 있거나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 막 구매해서 브랜드의 가치에 관한 관심이 최고치로 올라가 있고, 브랜드를 잘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과 브랜드에 대해 취재해서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 아직은 관심이 없지만, 우리가 향후 고객으로 목표하는 사람들에게도 스토리를 들려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궁금해할까? 최신 기술이 적용된 전자제품을 구매하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제품이 가동되는지, 놀라운 기능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진다. 보통은 제품을 최대한 많이, 잘 쓰고 싶기에 제품의 기능과 사용법이 가장 궁금하다. 나중에는 어떻게 더 좋아질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제품이 단시간 내에 유행에 뒤떨어져 버리거나, 사용 기간이 짧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트렌드에는 어떤 부분이 맞는지, 얼마나 트렌드를 잘 반영하면서도 특이성을 가졌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혹은 이런 제품은 누가 만드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전부 브랜드 스토리의 소재다.
어떤 원칙으로 써야 할까?
마케팅을 진행할 때 흔히 타깃 고객들에게 기대하는 생각의 흐름도가 존재한다. ‘훌륭한 기술, 기능을 가졌으니 그 브랜드는 앞서가는구나’ ‘앞서가는 브랜드니까 제품서비스도 좋겠구나, 그러면 나도 사고 싶다’로 이어지는 3단 논리와 같은 사고의 흐름이다. 많은 회사와 브랜드들은 이 흐름을 근거로 기술이나 우위점을 알리지 못하면 제품서비스도 판매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처음부터 대놓고 기술이나 기능 자체를 알리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보통 고객은 어느 회사, 브랜드가 최신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 그친다. 그 뒤에 이어져야 할 ‘알면 관심을 가진다, 관심을 가지면 사고 싶을 것이고 결국은 살 것이다’라는 가정은 좀처럼 현실이 되지 않는다. 믿기지 않는다면 소비자로서의 자신을 되짚어 보면 된다. 모든 정보를 논리적, 이성적인 단계를 거쳐 처리해 가며 구매 활동과 연계시키는지 생각해 보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테크 브랜드들이 브랜드 스토리를 쓸 때 많이 하는 실수가 기술 자체를 고객에게 이해시키려는 시도다. 어렵고 복잡한 원리, 방정식이나 이론들을 늘어놓은 콘텐츠로 고객을 괴롭힌다. 그런데 최신 기술임을 모른다고 해서 고객이 제품서비스를 사지 않는가? 반대로 최신 기술이 적용됐다는 사실만으로 고객이 제품서비스를 구매하고 사용하는가?
고객이 관심 있는 것은 기술을 통해 창출된 가치, 혜택이다. 기술이 제품서비스의 형태 안에서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무엇을 줄 것인지, 고객의 어떤 니즈와 연결되어 있는지가 제시되지 않으면 고객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기술은 고객이 궁금해하면 설명해 주면 되는 것이지 브랜드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 자체에 대한 자랑은 해당 기술 관련 세미나에서 하자. 브랜드 스토리를 통해 해당 제품 서비스가 고객에게 어떤 가치와 혜택을 제공하는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브랜드 존재 목적 자체가 재미와 리프레쉬라면 어떨까? 각광받는 열대의 휴양지 리조트를 마케팅해야 한다고 해보자. 휴양지 리조트는 생각만 해도 흥분되고, 재미있고, 리프레쉬가 될 것 같은 곳이다. 으리으리하고 호화로운 리조트를 건설하는 데 몇 년이 걸렸고, 땅을 얼마나 팠고, 무슨 자재가 들어갔다는 이야기로 고객들을 놀라게 해주고 럭셔리의 끝판왕이란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유혹이 크겠지만, 고객들이 그것을 듣고 싶어 할까?
고객들은 대리석으로 꾸민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여유로운 기분에 감동하고, 리조트 프로그램으로 1분 1초를 재미있고 신나게 보내고 싶어 하지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설계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지를 알게 된 다음에야 이탈리아산 대리석이 얼마나 사용됐는지 확인하고 더 확실히, 마음껏 정보를 받아들인다. 리조트 여행을 하려는 고객의 목적은 건축학 개론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와 스토리
가끔 “브랜드 스토리는 재미있는 일화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또는 “브랜드의 뉴스와 다른 것이 없지 않느냐”고 하기도 한다. 에피소드도 스토리가 될 수 있고, 뉴스도 크게 보면 브랜드 스토리의 일부라 할 수 있지만 단절된 사건, 정보들은 맥락 없이는 스토리가 되지 못하기에 스토리의 재료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브랜드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브랜드가 표방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일련의 시간 궤적 속에서 사건과 정보, 에피소드들이 브랜드가 내세우는 가치에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지, 고객과 어떻게 관계 맺게 되는지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에피소드와 정보를 적당히 섞어 한 편의 멋진 소설을 쓰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단편 소설처럼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던지면 에피소드 공개로 끝나버린다. 고객은 그 에피소드를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다.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는 단순히 재미있었다로 끝나지만, 브랜드 스토리는 브랜드의 약속을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어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시리즈가 되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있어야 한다.
브랜드 스토리는 시리즈물이다
브랜드 스토리는 하나의 완결판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끊임없이 생겨나고 발전해야 한다.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시리즈가 된다. 핵심이 되는 메시지를 가지고 근간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다양한 고객에게 소구될 수 있는 중심 이야기를 지지해 준다. 핵심적인 기능, 혹은 혜택이 있고, 그 외의 장점, 강점, 특별성이 브랜드를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처럼 스토리 또한 주가 되는 것들과 보조해 주는 것들이 있다.
흥행한 영화들이 시퀄, 프리퀄, 스핀오프 등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야기는 풍부해지고, 더 많은 팬을 만들고, 흥행의 가능성은 커진다. 브랜드 스토리는 브랜드와 무관해 보이는 소재들을 통해서도 구체화 될 수 있다. 무관한 소재, 사물, 상황은 브랜드에 의외성과 재미를 부여하지만 본질적으로 브랜드 약속을 전달하기 위한 오브제로 사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편안함이 핵심인 시몬스 침대가 침대는 구경할 수도 없는 팝업스토어나 갤러리라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드는 이유는 수면의 편안함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다채로운 상황과 생활 속의 연결고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브랜드는 스토리가 폭넓어지고, 무관해 보이는 상황과 사물, 질서를 끌어안을 수 있는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세계관을 만드는 브랜드 스토리
요즈음 게임이나 콘텐츠는 방대한 세계관을 먼저 기획해서 차근차근 공개하는 것이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세계관 구축에서 시작한 브랜드에는 2017년 유니레버에 인수된 미국의 조미료 브랜드 ‘Sir. Kensington’s’가 있다. 이 브랜드의 심볼은 허구다. 존재했을 법한 인물이지만,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Sir.Kensington’s는 하인즈로 대변되는 미국의 조미료 시장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미국에서 고급문화로 이해되는 영국의 이미지를 끌어오기 위해, ‘켄싱턴 경’이라는 허구의 브랜드 심볼을 만들었다. 19세기의 귀족이자 탐험가, 미식가인 켄싱턴경으 새로움을 추구하고, 현재보다는 미래에 관심이 많고, 진짜와 본래의 가치를 옹호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들은 켄싱턴의 옥스브리지(Oxbridge, 옥스포드와 캠브릿지를 합쳐서 부르는 명칭) 졸업장, 자선적 행동과 업적, 학문적으로 혁신적 성과 등에 이르는 디테일하고 구체적으로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그런 배경과 가치를 가졌기에 기존의 케첩에 만족하지 못해 스스로 진짜 케첩을 만들었다는 설정을 했다.
브랜드의 스토리가 풀어내는 것은 이 인물이 얼마나 리얼한가가 아니라, 이 인물이 표방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다. 그래서 새로움과 진짜의 것에 대한 갈망, 추구를 제품과 기업의 활동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성과를 만들고 있는지가 핵심 스토리다.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가 보면 켄싱턴이라는 허구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고, 브랜드의 약속과 가치에 대한 생각, 어떻게 B 코퍼레이션(B Corporation)으로 지정받게 됐는지, 그게 왜 브랜드에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만약 브랜드 스토리를 영화와 드라마와 경쟁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였다면 켄싱턴에 대한 더 큰 허구, 더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브랜드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한 심볼로서 켄싱턴을 만들었고, 필요할 때 활용할 뿐이다. 그들이 고객에게 하는 이야기는 켄싱턴경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 그 자체, 브랜드가 고객에게 무슨 약속을 하고,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인물의 스토리를 리얼하게 작성한 다음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 활동을 펼치면서 브랜드 세계관을 점차 키워가는 것도 훌륭한 마케팅이고 브랜딩이다
그렇다면 모든 브랜드가 허구의 심볼을 미리 만들어 놓고 해야 하는가? 아니다. 현실에서 대부분 브랜드 스토리는 브랜드의 성장발전과 함께 하나씩 만들어진다. 브랜드의 성장과 함께 만들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진정성이라는 면에서는 설득력과 공감력이 더 높은 장점이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브랜드 스토리가 고객에게 판매를 위한 쇼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진심이 담긴 솔직한 이야기, 감동의 에피소드를 보고도 맨 마지막에 배치해 놓은 사러 가기 버튼 하나로도 경우에 따라서 고객들은 실망을 느낀다. 브랜드는 고객과의 관계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 이점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필요는 없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서도 안 된다. 특히 진실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에서 구매 암시를 하는 것은 최악이다. 서로의 이득에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이득이 사라지면 끝나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고, 그 순간 고객은 브랜드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브랜드가 스스로 정한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달성하는지를 공유하고, 공감받고자 하는 진심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많은 브랜드 스토리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아닌 척하지만 결국은 구매해 달라는 의도를 깔고 작성되기 때문이다. 영업이 존재하는 것은 고객 결정의 순간을 우리 브랜드로 유도하는 노하우를 알고 있어서다. 브랜드 스토리는 결정의 순간에 다다를 수 있도록 고객과 탄탄한 관계를 맺고, 좋은 인상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 세일즈는 결코 아니다.
브랜드 스토리는 브랜드로 만들어 낼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자 실재하는 삶의 이야기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거대한 비전일 수도 있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계획된 거짓말과 과장으로 꾸며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대부분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최소한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마법 같은, 환상적인 브랜드의 성장과 발전, 고객 경험 등으로 느껴지고 재미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세계관이 없는데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어 낼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브랜드가 해 온 일들, 일궈 온 성과를 어떠한 세계관으로 풀어낼 수 있나를 생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