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탈 Apr 26. 2022

스트리밍 비즈니스의 본질

감성공감의 확장

대학 다닐때 대유행이었던게 카세트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 녹음해서 선물하는거였다. 라디오에 출연하는 좋아하는 배우, 가수, 그룹의 라이브 방송을 녹음해 주는건 상당한 애정의 표현이었고, 길거리에 불법 카세트테이프 파는 노점도 많았고, 흔하게 가요나 팝, 영화음악 등 각종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살 수 있었다. 자신이 선곡한 음악들을 담은 테이프 장사로 돈 깨나 만진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저작권 의식이 점차 강해지고 음악은 사서 듣는것이 된 이후에도 누군가의 음악을 공유하는 것의 본질은 저렴한 혹은 공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감성을 나눠가지는 것이라 살아남아 비즈니스가 되었다.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에 자신이 고른 음악을 앨범처럼 게시하면 삘(!)이 맞는 사람이 그걸 듣는 것이다. 지금 나는 멜론에서 일요일 오전에 듣는 음악 같은걸 듣고 있는데 마음에 들면 계속 듣지만 아니면 다른 앨범을 찾아 탐색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너도 좋아해? 라는 반가움은 음악비즈니스의 아주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런 감성공유 니즈를 비즈니스화한 스포티파이는 거대제국을 건설했고 뒤를 이어 하나의 산업이 새로 생겼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산업이 된 이유를 편리로만 이해하면 절대 풀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감성공유에 있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이성적 프로덕트가 아니다. 어제는 좋았지만 오늘은 듣기 싫을 수도 있고, 개인적 사건과 상황이 겹치면 더 없이 비극적이고 기쁘게 음악을 듣게될 수도 있다. 실연하면 모든 이별노래가 내 가슴에 와 꽂히는거다. 음악을 듣는 “방식”을 편리하게 해준 것, 더 개인에 맞춰준 것이 현재의 음원제공 비즈니스의 비즈니스 모델인 것은 분명하나 그 BM이 무슨 가치를 제공하느냐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음악은 편리가 가치가 될 수 없다.


감성의 공유에서 빠질 수 없는 하드웨어가 줄 이어폰이다. 예전 드라마나 영화에는 카세트플레이어로 좋아하는 음악을 이어폰 나눠끼고 듣는 장면이 있다. 줄이어폰은 사람을 물리적으로 가깝게 만들어준다. 길어야 50센티 내외의 줄, 양쪽 귀로 나눠지는 줄은 20센티가 될까말까, 귀에서 빠지지 않게 하려면 딱 붙어 있을 수 밖에 없고,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는 공유감과 더불어 신체접촉으로 인한 친밀감의 극대화는 듣고 있는 음악에 대한 감정 역시 고양시킨다.


줄이어폰으로 음악 함께 듣기 장면은 씨디가 나오고, 엠피3가 나온 뒤에도 빠지지 않는 클리세로 쓰였는데 무선이어폰이 나오면서 점차 사라졌다. 가끔씩 90년대-2천년대 배경의 작품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요새는 줄 이어폰을 나눠쓴다는게 어떤 감성인지 알까 모르겠다. 무선이어폰 한쪽을 나눠 준다는건 말이 안되고,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위생 이슈로도 나눠쓰기는 금지에 가까우니 이어폰을 나눠쓰는 장면을 본다면 비위생적이다, 더럽다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케팅의 시작은 브랜드 스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