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이름을 불러주는데서 시작한다
진짜 2023년이 되었다. 매년 새해 인사를 두 번씩 하면서 살고 있지만 연말연시의 들뜨고 흥분된 기분은 양력 새해 첫날, 1월 1일에 느끼고, 음력 새해는 어쩔 수 없이, 소위 빼도 박도 못하는 진짜 새해가 되어버렸다는 일종의 체념과 수긍을 하며 맞는다.
실제로 기업이나 개인 모두 음력설이 지나야 그 해의 일들을 제대로 시작하고, 일정이 잡히며 진행되므로 구정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관용구가 아니라 이제부터 올해 할 일을 제대로 해 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https://youtu.be/DXvbbffaxzY
BTS의 공식 영상 채널에는“BTS(방탄소년단) 2023 Happy Seollal Greeting” 이라는 제목으로 새해 인사 영상이 올라왔다.
설날은 ‘Seollal’이죠!
우리는 설날, 혹은 구정이라고 하지만 외국에서는 보통 ‘Chinese New Year’ 혹은 ‘Spring Festival(春節의 번역 표현)’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Lunar new year’이라는 표현이 국가, 민족 중립적인 표현으로 지지를 얻고 있는데, 음력설을 쇠지 않는 일본을 제외하고 동양권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음력으로 설을 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력설을 부르는 일반적인 표현은 Chinese New Year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다양한 설 행사가 펼쳐지고, 사자탈춤이나 요란한 폭죽이 대놓고 중국 명절임을 과시한다.
해외에 있을 때, 동양권에서는 설을 부르는 자국어 고유의 명칭이 있는데 왜 중국 새해라고 불러야 하는지, 한국인으로서 중국 새해, 음력 새해라는 두 표현모두 탐탁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한국어로 설날이라고 한다며 가르쳐준 적도 있지만, 솔직히 기억할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쩌겠어? 하는 심정으로 불편함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번 음력설에 BTS가 한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SNS를 통해 새해 인사를 했다. 맏형 진이 입대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둔 듯, 일곱 명의 멤버가 모두 환한 웃음으로 2023년 새해 인사를 전 세계에 보냈다.
그런데 BTS의 새해 인사는 이전과 달랐다. 그들의 공식 영상 채널에는 “BTS(방탄소년단) 2023 Happy Seollal Greeting” 이라는 제목으로 새해 인사 영상이 올라왔다. Chinese New Year도, Lunar new year도 아닌 ‘Seollal’이라는 한국어를 사용한 것이다.
영상을 한국어로 녹화한 것은 당연하고, 설날 노래를 부르고 떡국을 먹는다는 등의 한국 고유의 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BTS의 팬들은 그들을 통해서 한국의 음력 새해가 설날이라고 불린다는 것, 떡국이라는 음식을 먹는다는 한국 문화 고유성을 알게 되고, 더 이상 중국 새해가 아니란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이름을 부르는 것, 어떤 의미가 있는가?
거의 모든 글로벌 브랜드들이 중국의 구매력에 무릎을 꿇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들도 중국 럭셔리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규모에 호응하여 음력설에 중국의 설 풍습을 따른 프로모션과 캠페인을 성대하게 진행한다.
자신들이 가진 엄격한 브랜드 가이드라인에도 예외가 당연히 있다는 듯 붉은 색과 금색, 흘림체로 써내려간 ‘新年快樂(중국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한문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나, 중국에서 설날 주고받는 붉은 돈주머니인 홍바오(紅包)를 새해 프로모션에 활용하는 것은 아주 고전적인 사례다.
음력설은 그야말로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아시아 각국은 자신의 언어가 있고, 자신의 언어로 부르는 새해의 이름이 있다. 영어로 그렇게 표기되지 않을 뿐, 개념까지 중국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양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공용어인 영어로 ‘Happy new year’라고 표현한다고 각각의 나라 언어로 부르는 이름이 사라지는 것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중국은 음력설 표기를 Chinese New Year가 맞다 우긴다. 음력설이라는 개념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벗어나는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한다.
중국의 돈이 무서워 다들 입도 벙긋 못하던 상황에서 BTS의 Seollal 은 음력 새해의 개념이 중국의 것이 아니고, 각 나라의 문화에 따른 표기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는 사실, 한국 문화와 언어의 독자성에 따른 표현을 통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BTS가 한복을 입고 명절 인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매년 추석, 설날에 한복을 입고 전 세계 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지 꽤 오래 되었고, 그 덕분에 해외에서 한복의 인지와 인기가 상당히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폄하, 왜곡, 공격은 상상을 못 할 만큼 극성이다. 중국의 샤오펀홍(小粉紅)은 동양권의 모든 문화를 자신들의 것이라 우기면서 각국의 전통문화를 공격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이 자국의 문화를 도둑질한다며 인터넷 상에서 그악스러운 공격을 하고 있다. 한복은 대표적인 공격 대상 중 하나이고 그림, 가구, 장신구, 건축, 음악과 악기 등 공격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 전통문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가을부터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에서는 대규모 한류 전시회(The Korean Wave)가 진행 중이다.
BTS의 설날 인사와 K-Wave 전시에 맞춰 V&A박물관은 한국의 새해, 설날(Korean New Year, Seollal)이라는 표현을 써서 음력설 인사를 했다.
하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끔찍한 공격으로 게시물을 내리고 Chinese New Year라고 표현하고 이미지도 중국 전통의 것으로 바꾸었다.
한국에서 새해를 설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고집과 패악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참으로 씁쓸한 해프닝이다.
꽃, 의미, 그리고 브랜드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새로운 의미가 되고, 독자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의미다.
아미는 BTS의 팬클럽 이름이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하고 충성스러운 팬덤이라 생각한다.
BTS가 그들의 아미들에게 아미라는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아미는 전체로서, 개인으로서 존재하며 BTS를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 준 것이다. BTS가 불러준 설날이란 명절의 이름은 아미들에게 의미가 될 것이다. 이 날은 BTS가 떡국이란 음식을 먹고 한복을 입고 아미들에게 행운과 사랑을 약속하는 날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가수의 모국에서 중요한 명절이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날을 과연 앞으로도 Chinese New Year라고만 규정짓고, 그렇게만 부를 수 있을까?
제품서비스를 출시하거나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을 때, 기존 플레이어의 프레임 속에서 경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잘 해도, 기존에 구축해 놓은 인식과 시장의 구조 안에서 더 많은 파이를 얻게 되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그 시장이 레드오션이라면? 현존하는 제품서비스 시장은 거의 레드오션이고, 우리 브랜드가 그 물을 더 붉게 만들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우리 제품서비스가, 브랜드가 헤엄치는 바다에서 계속 최종 포식자의 먹이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생존의 확률 계산을 하며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바다에서 우리 브랜드가 새로운 먹이사슬을 만들어 낸다면? 그리고 제일 위에 우리 제품서비스가 존재하게 된다면? 붉은 바다가 순식간에 푸른 바다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인식의 프레임을 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여태껏 발버둥치는 미투, 혹은 잘해야 나쁘지 않은 경쟁자 중 하나로 취급 받았다면 새로운 인식의 세계에서 우리 브랜드를 시장의 형성자, 기준이 되게 만드는 것으로 시장을 혁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브랜드가 꽃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 한류 팬이 1억 명이 넘고, K-pop이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어 지구촌 곳곳에서 재생되고 감상되며 퍼포먼스가 오마주가 되기까지 하는 요즘이다.
BTS를 비롯한 한류 팬들은 김구 선생까지 안다고 한다.
오직 높은 문화의 힘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자신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하는 농담 같은 진담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날(Seollal)은 새로운 문화 프레임으로 어떤 작용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지는 새해 벽두다.
*이 글은 패션포스트 창간 특집호에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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