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7/2 21일차

by 크리스탈

아침 7시 40분 기차를 타고 레온에 도착했다. 사아군에서 레온까지 기차로 25분. 약 50여 킬로미터 정도 된다.

50 킬로미터면 이틀을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 25분 만에 올 수 있는 곳을 이틀 걸려 힘들게 힘들게 걷는 게 우둔할 만치 고집스러운 순례길이다.


기차에서 며칠 전 만난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남편이 너무 원해서 부인을 데리고 온 케이스인데, 지금은 남편이 더 힘들어한다고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함께 걷던 한국인 일행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레온 가서 쉬다가 다시 걷기로 했다고. 아내는 처음 봤을 때도 제법 말랐었는데 며칠 사이 더 마르고, 남편은 더 표정이 우울해져 있었다. 예쁜 부부인데 이 길 때문에 싸우지는 않겠지?


역에서 만난 독일 아저씨 헬가와 레온 성당 앞에서 함께 아침을 먹고 헤어졌다. 각자 숙소를 잡고 buen camino! 하며 헤어졌는데, 언젠가, 산티아고에서 아니면 길 위에서 또 만나겠지

아침 먹던 카페에서 그 부부를 또 만났다. 그리고 화장실 다녀오다가 비둘기 똥을 바지에 맞은 나를 보고 아내는 좋은 일 생길 징조래요 하고 위로해 주었다. 음..과연? 하고 웃었지만 무사히 순례길 다 걸을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닐까 생각했다.


레온 성당 뒤쪽에 숙소를 잡고 성당을 구경했다. 아마추어도 아닌 문외한이 보수공사를 하는 바람에 무너질 위기에 까지 처했고, 근대에 엄청난 돈을 들여 수리를 했지만 더 이상의 개선이 불가능한 아쉬움이 많은 내부 구조를 갖고 있는 레온 성당. 크고 아름다웠고, 음산했고 평화로왔다. 물론 스페인 성당들의 특징인 정신없는 금칠 제단이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50킬로를 왔으니 800킬로 완주는 글렀다. 하지만 내 몸이 외치는 아우성을 외면하면 언제 내 몸이 나를 완전히 배신할지 모른다. 걸으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buen camino라는 인사말과, listen to your body이다.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라는 말이다. 아프면 도움을 청하고 치료를 하고, 졸리면 자야 순례길을 무사히 걸을 수 있다. 한참 발이 아파 절뚝거리며 걸을 때 앙드레와 모니크는 만날 때마다 take your time, listen to your body, slowly but never give up이라고 다독여 주었다.

아픈데 억지로 걷고, 배 고픈데 억지로 참고, 힘든데 억지로 일어나고 더 걸으며 나 자신을 좀먹어 온 스무날을 반성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지난 수십 년 세월 동안 얼마나 내 몸의 목소리를 무시해 왔던가.. 싶다. 뭐 어떻겠어? 라며 살아온 시간들이 쌓여 오늘의 형편없이 망가진 내 모습을 만든 것. 가장 중요한 것, 위대한 진실은 항상 가장 단순하고 쉽다. 그렇기에 너무 쉽게 무시당하는 이유이고.

listen to your body, listen to your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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