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28일차
아침 5.0
식품 9.6
저녁 10.0
오렌지주스 3.0
어제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갈리시아 표지석에 눈물이 터졌는데 오늘 오세브레이로에서 알토도포요 가는 마지막 언덕이 너무 힘들어서 어이구 어이구 소리가 막 터져 나왔다. 그러고 올라오니 한국인 한 무리가 앉아서 안녕하시냐며 입모양만으로도 한국인인거 알겠더라며 먼저 인사를 한다. ㅋㅋㅋㅋ
원래 생장에서 준 일정표대로라면 나도 알토도포요에서 잤어야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달라졌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제 알토도포요까지 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귀국한 부모님께 전화로 안부 인사드렸는데 목소리 괜찮으셔서 안심이었다.
그리고 맥주잔에 주는 오렌지주스, 커피랑 맛없는 크르와상으로 아침 먹고 다시 출발.
내리막길을 오후 내내 걸어서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했다. 함께 얘기하며 온 미국인 자넷은 이전에 이미 이 길을 걸었었고, 오스피탈레라 경험이 있고, 앞으로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53세라는데 참 건강하고 밝고 편해 보였다. 나도 그 나이에 그런 모습일 수 있겠지?
마을 입구에서 난 먼저 알베르게를 찾아가고 세레나와 파올로가 남았는데, 한 시간 못돼서 세레나가 혼자라며-파올로가 자넷 따라가버렸다고 한다-저녁 같이 하자고 했다. 알토도포요에서 만난 한국 아이들이 볶음밥 해 준다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세레나는 볶음밥과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니까 포기했다.
둘이 만나 마을 한 바퀴 돌고, 오렌지주스 마시며 세레나와 파올로 이야기를 듣고, 저녁 먹으며 그녀의 홀로일 수 없어 괴로운 연애담을 듣고.
변호사였다가 의뢰인들한테 돈 청구하는 게 힘들어 포기하고 신용보증회사에서 일하는 세레나는 혼자 있는 것이 끔찍한 남자와 함께 있는 것보다 싫다고 했다. 난 차라리 혼자인 게 나은데.. 하긴 나도 혼자되는 게 힘든 때가 있긴 했지.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뭔가 좀 허술하고 귀엽고 좀 찌질하기도 한 그녀가 왜 나한테 친밀감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 비슷한 나이로 느껴져서?
미현에게 카톡이 왔는데 하도 절뚝거리며 걸으니 누가 119에 신고했고 엠뷸런스를 만났다고 했다. 다들 자기만의 길을 끈기 있게 가고 있다. H 역시 아프지만 즐길 거 즐겨가며 가고 있고. 끝이 다들 행복하면 좋겠다.
오늘 자넷과 얘기하며 깨달은 것은 내가 찌질하고 한심하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찌질하고 잘난척하고 한심하지만 최소한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데 뭐 어때?! 그게 나인걸 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아무리 거지같이 남루한 모습으로 다녀도 난 진짜 거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고 부끄럽지도 않다. 그리고 내 본질에 집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힘들지만 가치 있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