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 31일차
아침 3.0
점심 6.5
숙소 6.0
초 0.4
저녁 9.5
19킬로 걸었다. 세레나와 파올로가 내가 묵을 곳에서 점심 먹으며 기다리고 있으면서 더 가자고 했지만 거절. 오늘부터 4일간은 최대 23킬로 최소 19킬로를 걸으며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고 싶어서. 파올로가 나보고 enjoy~ 라고 몇 번이나 말해줬다. 즐기라..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카미노에서 즐길 수 있다면 진정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은 걷기 위해 걷는, 그야말로 뭘 보거나 제대로 느끼거나 시간을 즐기는 것은 뒷전인 날이 많았다. 당초 하루 20킬로씩 40일 잡았으면서 중간에 미현을 만나면서 그녀의 일정에 맞추느라 급히 걸었고 무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꾸 더 많이 걸을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과 쓰잘데 없는 성취감 때문에 무리한 것도 있고.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항상 지나고 후회하는 인생
숙소 와서 씻고 빨래하고 있으니 레온 갈 때 같은 기차를 탄 한국인 부부가 왔다. 친동생 만난 듯 반가워서 수다를 떨었다. 15일에 산티아고 들어간다고 하니 나와 일정이 같은 듯. 서로 숙소 예약했냐고 묻고 그러면서 15-16 숙소 예약을 했다. 도착한 그 날은 좀 편하게 혼자 잘 자고 싶어서. 어차피 미현은 16일에 올 테니.
미현은 베드벅에 알레르기가 겹쳐 병원을 다녀왔다 한다. 나도 계속 물리고 있긴 하지만 그녀는 좀 상태가 심각하다. 아마 피로 누적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 때문이 아닐까. 걱정이다. 무사히 산티아고 도착하길 빌어야지.
가이드북에서 말한 대로 사리아 이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새로운 사람들도 몇 번 보니 익숙해지고 인사하게 되고 보면 반갑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렇게 쉬운 경우는 잘 없을 것이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숙소 옆 침대에서 자고, 같은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 요기를 한다. 길을 가면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카미노 초반에 잘 어울렸던 사람들 중반, 후반이 다 다르고 각각이 소중하지만 그중 많이 생각나고 특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손에 꼽힌다. 모니크&앙드레, 미레이&롤랑, 세레나&파올로, 권혁, 엔젤, 아야, 철수(끝까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빌바오의 그!), 그리고 미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사랑을 받고 가슴에 새기게 될 줄은 몰랐다. 모자란 내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와 주고, 대가 없는 선의를 베풀어 준 사람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날 대해 준 다른 많은 사람들도 너무나 고마울 따름.
오늘 밥 먹은 카페의 주인장 겸 요리사 아주머니 역시 얼마나 고마운가.. 역시 사람은 타인의 호의로 살아가는 존재.
세레나가 준 티셔츠를 입었는데 잘 맞다. 살이 좀 빠지긴 한 듯. 계속 이렇게 한 달만 더 걸으면 살이 엄청 더 빠질까? 그렇진 않겠지? 점점 더 많이 걸어야 살이 빠지겠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