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아르수아

7/13 32일차

by 크리스탈

아침 7.5

맥주 1.8

주스 2.5

숙소 10.0

저녁 2.7

식품 2.14


처음으로 거한 아침식사를 먹어봤다. 계란 프라이 두 개랑 베이컨 세장, 토스트 두 쪽, 오렌지주스와 블랙커피.

다른 사람들이 챙겨 먹는 걸 봤지만 너무 부담스럽다 했는데 먹고 나니 힘이 나서 잘 갈 수 있었다. 물론 점심때까지만. 이후 바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오렌지주스 한잔 마시고 아르수아 도착했다.


가까운 알베르게 들어갔는데 씻고 빨래하고 오니 누가 내 침대에 짐을 풀고 있었다. 그때 리셉션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내 맘대로 다른 베드로 옮겼더니 나중에 왜 여기 있냐고 난리. 너네가 내 침대 딴사람한테 줘서 옮겼다 하니 한참 어디 가더니 나한테 문간에 있는 소파베드로 옮기란다. 싫다 했더니 한참 또 어디 갔다 오더니 침대 놔줄 테니 옮기겠냐고 하길래 그럼 문 잠가라 하니 그건 못한다고, 그래서 못 옮긴다 버티니 다른 데 갈 거냐고 한다. 화나서 째려보는데 어떤 아저씨가 자기가 문간 소파베드 갈 테니 나보고 자기 있던 침대 쓰라고 해서 결국 그러기로 하고 상황 종료. 고마운 마음에 복숭아 두 개 선물했다. 너무 작은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큰 건 지나치고 너무 많으면 무거우니 마음을 표시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상황 정리되고 밖에 나왔는데 아직 시에스타 중. 카페 가서 커피 한잔에 케익 한 조각 먹고 쉬다 왔다. 오늘은 아침을 너무 거하게 먹고 별로 걷지 않아서 많이 먹는데 죄책감이 들기도 해서 간단하게 과일 한 개와 우유 한잔으로 저녁을 끝냈다.


내일 하루 걷고 모레는 산티아고 입성이다. 벌써 끝나간다니 놀랍다.

이렇게나 오래 걷고서야 깨달은 것은 주어지는 그 순간에 몰두하고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순례길을 걷는 요령인 것 같다는 것. 인생도 결국 길이고 그 길에서 주어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감사하고 누리며 최대한 소중히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덕길을 오를 때 아무리 힘들더라도 발끝만 보며 걸으면 더 힘들고, 허리를 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앞을 보고, 가끔은 끝나는 지점이나 끝날 거라 생각되는 지점을 생각하며 고개를 들고 가야지 고된 길을 걷는 희망이 있으니까.

또한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짐 쌀 때 정말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만 챙겼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짐을 일부 산티아고로 부친 이후에도 여전히 내 가방은 무겁고 매일 쓰지는 않지만 위안이 되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가끔, 아주 드물게 한 번이라도 쓴 것들은 가지고 가는 보람이 있는데 단 한 번도 쓰지 않는 것이나 예전에 한두 번 쓰고 안 쓰지만 가방 속에 있는 것들은 볼 때마다 고민스럽다. 내가 왜 진작 미련을 버리고 저것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 하니까. 내 인생에는 한숨짓게 하는 대상이나 상황들이 대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여행 오기 직전에 간소하게 살기에 관심이 생겨 책 몇 권을 읽었는데 이번 여행으로 정리, 버리기가 진정 필요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 끝나고 한국 돌아갈 때는 올 때보다 적어진 가방을 가지고 돌아가자는 목표를 세워본다. 단, 선물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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