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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Sep 24. 2016

첫 인터뷰의 날카로운 추억

오만함이 망친 기회

아직도 기억 나는 저 세상 부끄러운 스토리ㅎㅎㅎ


첫 회사에 한참 열심히 다니다 약간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내게 이직이란걸 하라고 헤드헌터가 전화를 했다.

들어보니 나름 업계에서 경쟁하는 괜찮은 회사이고, 유명한 외국계인데 처우도 좋다 해서 으쓱하며 인터뷰를 보러 갔다.

문제는 내가 주제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똥뱃장에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면접 준비란 것을 하나도 하지 않고 무작정 약속 시간에 회사에 갔다.


마케팅 디렉터라는 분이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 영어로 자기소개랑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해 보라고 했다.

외국계니 영어를 당연히 해야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영어 자기 소개도 한 줄 써보거나 말해 보지 않고 거길 갔던 거다. 나한테 무슨 영어 능력을 검증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학교 다닐때 꾸준히 영어학원을 다녀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내가 몇년 일한 커리어를 정리하고 성과를 자랑하는 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닌, 면접준비의 영역.


생각나는대로 음음..하며 한마디 하고 음음 하며 또 한마디 하고. 말하다 보니 내가 딱히 잘 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원래 다 그정도는 해야 하는 일을 떠들고 있는 것도 같고. 그러나 진땀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말을 마치긴 했는데, 매우 괴로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던 그 분은 마지막에 정말 간곡하게 충고를 해 주셨다.

면접을 보러 오면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외국어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더더욱 준비를 잘 해야 한다라고.

알았다고 하고 나왔는데 그때는 부끄러움도 별로 없던 세상 나 잘난 20대였던 터라 별 소리를 다 한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 이후 몇 번 면접을 보며 면접 경험이란게 쌓이면서 첫 인터뷰를 생각할 때 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움에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그 분은 오죽 답답하면 면접을 보러 온 사람에게 어쩌면 나무라는, 어쩌면 충고하는 말씀을 할 생각을 했을까? 만약 다시 마주친다면-얼굴도 기억 나지 않지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도망가야지 하는 생각을 오래동안 했었다.


그 이후 이직을 하고, 면접 선수가 되었지만 첫 인터뷰의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이력서를 쓰거나 면접을 준비할 때마다 그 때를 떠올리며 나 자신을 다시 탈탈 털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생각해 보면 그 일 이후 나의 오만과 무지, 근자감이 조금 꺾였고, 조금씩 사람의 꼴을 갖추게 되었던 것 같다.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것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 부끄러움이란 인간에게만 허락된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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