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순례길을 기억하게 하는 것들

by 크리스탈

첫날 피레네를 넘어 오면서 왼쪽 새끼 발가락에 물집이 크게 생기고 발톱이 떨어질 것 같이 흔들렸다.

이 상처는 묵직하고 깊은 통증을 수반했고 거의 3주나 계속 되었는데, 전체 여정이 35일이었으니, 여정의 3분의 2를빠질락말락하는 발톱 통증과 함께 한 것이다. 상처 치료 후 밴드를 감고, 두꺼운 등산양말을 신으니 신발 속에서 압박이 너무 심해서,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컸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 마침내 얇은 일반 양말을 사 신었는데, 아침에 처음 신발에 발을 구겨 넣을 때는 좀 수월하긴 했지만 걸을 수록 붓는 것은 매일반이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아, 양말이 얇아서 빨리 마르는 부차적 혜택은 있었구나..

하여간 이 통증이 지속되는 내내 신발을 두 치수 큰 걸 사지 않았던걸 후회했다. 누군가 길을 간다면, 두 치수 큰 등산화와 양말은 두꺼운 것과 얇은 것 모두 준비하라고 얘기해 줄거다. 결국 새끼발톱은 한국 돌아와서 빠졌고 지금도 아직 완전한 발톱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몇달 더 지나면 처음 돋은 얇고 울퉁불퉁한 발톱이 다 자라나고 보통의 발톱이 생기겠지.


열흘쯤 지났을 때인가, 오른쪽 발바닥 앞부분과 엄지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물집의 통증은 새끼발가락의 발톱이 빠지는 통증과 다르다. 물기를 빼고 소독하고 실을 꿰어 둔 뒤 밴드를 감고 치료를 끝내는데, 걷기 시작하면 마찰이 생기면서 쓸리는 아픔이 짧고 강렬하다. 그렇게 아픔을 좀 견디면, 통증에 적응이 되고, 물집을 치료하는 과정을 매일 겪으면서 하루 하루 조금씩 통증이 줄어든다. 발톱 빠지는 통증은 발톱이 빠질때까지는 절대 줄어들지 않는데 물집의 통증은 짧고 강렬한 아픔이 계속 되더라도 통증의 크기는 조금씩 작아진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발톱이 빠지는 아픔도, 물집 상처의 아픔도 아닌, 많이 걸어 생기는 발의 피로통이었다.

평균 25킬로를 매일 걷기 때문에 발은 쉴새 없이 내 체중을 받아내며 땅의 반발을 누르느라 혹사당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고 부츠를 벗으면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꽁꽁 싸맨 부츠를 벗으며 느껴지는 시원함, 해방감과 욱신거림이 동시에 찾아오는데, 샤워하러 조리만 신고 걸어갈 때면 발바닥 전체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통증, 발이 부어 있는게 느껴지고, 한발 디딜때 부은 발바닥 전체의 촘촘한 통각세포들이 아우성을 친다.

자려고 누워 있을 때도 통증은 날 내버려두지 않았다. 거의 매일 밤, 살풋 잠이 들었나 싶으면 어김없이 양쪽 발이, 발 어느 한부위가 아닌 전체가 무시무시하게 욱신거려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자다가 이불킥 한다는 표현을 우스개로 사용했었는데, 자다가 이불 아니 침낭 차고 일어나는 일을 실제로 겪어보니 그게 어떤 마음이며 고통인지 설명하기도 어려울만큼 절절하다.

아픈 발을 살살 주무르며, 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서글프게 느껴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왜 이런 짓을 돈 들여 하나 싶은 생각도 절로 들었다.


한동안은 배낭 무게와 잘못된 걸음걸이로 고관절이 아파 절뚝거리면서 짐을 버리지도 못해 고민만 하며 끙끙거렸었다. 그러다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짐을 보낼 수 있는 지점에 이르러 몇 킬로에 이르는 짐을 보내고 허리와 골반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으로 신나게 걷다가 무리해서 발꿈치 통증이 더 커지기도 했다. 고관절은 순례길 중반까지 좀 아프다가 괜찮아졌는데,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정형외과를 가면 알 수 있으려나.


순례길 오기 한달 전 쯤에 발생한 왼쪽 팔의 테니스엘보는 지금까지 낫지 않고 있다. 등산스틱을 양 손에 들고 걸으면 훨씬 쉬운데, 한쪽 팔이 아프니 한쪽으로만 짚다 보니 자세가 더 틀어지고, 안 짚은쪽 고관절과 허리가 더 아파지는 것 같아서 아예 두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고 걸었다. 배낭을 들어 올릴 때도 왼쪽이 아프니 오른쪽으로 주로 힘을 썼는데, 같이 걸은 친구가 앞으로 오른쪽에 통증이 올거라고 걱정했다. 아직은 괜찮은데, 언제 오른쪽도 아파지게 될 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통증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어떤 곳도 아프지 않으면 죽은 몸이라고.

30대까지는 아픔을 감기몸살이나 어딘가를 다친 상처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다. 40대가 되면서는 아픔은 일상이 되었고,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신호가 되었다. 영화 UP을 보면 프레데릭슨할아버지가 일어나서 온 몸을 우드득거리며 펴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요새 내 모습이고, 순례길에서는 매 순간의 일상이었다. 통증을 통해 삶을 확인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같지만, 병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통증없이 말기까지 진행되는 암이라지 않나. 내가 멀쩡히 살아있고, 내 몸의 모든 부분이 정상적으로-비록 기능이 좀 떨어졌을지라도-작동하고 있어서 아픔을 호소하고, 문제를 뇌에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순례길이 고통으로 기억되는 것 역시 하루하루 살아있었다는 기억으로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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