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즐길 자유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대한 예의

by 크리스탈

샘킴이 나오는 지중해음식여행 프로그램을 보자니 스페인여행이 생각났다. 그가 맛있다고 탄성을 지르며 먹고 있는 토마토 바른 바게트를 난 싫어했다. 아침에 바에 가면 뜨거운 커피 한잔과 그 빵을 시켜 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난 한사코 덩치만 큰 공갈빵같은 크르와상과 큰 사이즈 또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켰다.

토마토 파테를 바른 바게트는 도저히 어느 분류에 넣어야 할 지 판단하기 어려웠는데 먹고 나면 항상 스파게티와 버터맛 나는 달콤한 빵이 동시에 먹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내 머리 속 맛지도에 토마토는 스파게티와, 바게트는 버터와 쨈이라는 나라가 엄정한 국경선을 경계로 나눠져 있는 모양이다.

샘킴은 만나고 싶었던 스페인요리사를 찾아가서 그 쉐프가 개발한 꿀을 바른 토마토바게트를 먹고는 정말! 맛있다고 했다. 그 순간 왜 나는 그곳에 있는 50일 동안 그렇게 고집스럽게 식성을 지켰을까 후회되었다. 그 긴 시간이라면 충분히 그 빵 정도 입맛에 길들일 수도 있었을텐데 겨우 한두번 먹어보고 내것이 아니라고 탁 쳐내버린 것이다.

서울에서 바게트와 토마토퓨레를 사서 해먹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길들여질 수 있었을 어떤 맛이 나지는 않겠지.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내게 주어진 많은 기회와 새로운 가능성의 순간을 알게모르게 스스로 거부하고 흘려보냈다. 피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갔으면서도 최대한 마음을 닫고 흔들리지 않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피곤하고 힘드니까 다른것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것들 이 길 다 걷고 나면 해볼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수십일을 그런 마음으로 미루고 피하며 지낸 뒤엔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 놓쳐버린 것 같다.


인생은 두번 오지 않는다. 오늘도 두번은 없다. 내가 밀어내버린 토마토바게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날 일이 있을까? 그걸 기다리며 주저앉아 있기에는 너무 많이 살아버리지 않았나.. 나에게 주어진 순간은 과거의 내가 만들어 준 것이다. 과거의 나로부터 온 소중한 선물을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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