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초적이고 곤란한 일들
순례길을 걷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제법 있는데, 그 중 가장 곤란한 일이 생리현상 처리하기다.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올때는 씻고 화장실 다녀오고 하지만, 아침을 먹은 뒤 좀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랫배의 신호. 다행히 다음 마을까지 얼마 안되는 거리라면 좀 참아도 보지만 출발한 지 겨우 한시간 남짓인데 신호가 오면 정말 갈등에 빠진다. 그것도 심.각.한. 갈등에.
도저히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이제부터는 적당한 장소 찾기를 시작한다. 길이 험하거나 힘든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리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욕구만이 단 한가지 목표가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순례길이 아니라 탐색길을 걷게 되는데,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양쪽 앞뒤 모두를 훑으며 적당히 은폐되고 길과 너무 떨어지지 않은 곳이 없나 열심히 두리번거린다.
무릇 좋은 장소란 낮은 관목과 키높이의 풀들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고 길에서 약 2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양쪽에서 가려져야 한다. 간혹 우회로 같은 좁고 인적 없는 작은 오솔길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런 곳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의외로 적당한 장소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양쪽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길인지라 한 쪽에서 가려진다 싶으면 다른 쪽은 휑하니 드러나 있고, 계속 높은 나무들만 무성한 숲길이 계속되기도 하며, 사람 한두명 지나갈 만한 좁은 풀숲길이 계속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들에 대한 강박도 일정 수준의 인내심과 신체적 한계를 지나고 나면 매우 느슨해진다. 좀 트여있더라도 인적이 없으면 순식간에.. 하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될 만한 곳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행이 있으면 좀 더 수월한 것이, 망을 봐주므로 다소 어색하고 멋적기는 해도 문제를 해결하기 쉽다. 혼자일 때가 가장 고심스러운 것이다. 무엇이든..
난 순례길 33일 통틀어 서너번쯤 자연을 벗삼았던 것 같다. 처음엔 도저히 어떻게...했었는데 정말 도저히 어떻게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열심히 장소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 아 이러려고 순례길 걷나 자괴감 들고..
같이 걷던 미현에게 망을 좀 봐달라고 하고 부리나케 수습을 하고 나왔는데, 1분도 지나지 않아 자전거 순례자 서너명이 쌩하니 지나갔다. 아..다행.
한번 하기 어렵지 두번 하기 어렵냐는 말이 있는데, 이 케이스에 딱 들어 맞는다. 처음 어렵고 힘든 갈등의 순간을 겪고 나니, 다음부터는 부끄러움도 걱정도 좀 덜해 지는 거다. 그리고 같이 걷던 다른 친구들이 갑자기 안보이면 좀 있다 막 쫓아 오고, 앞에 걷던 친구가 안보이면 좀 있다 풀숲에서 튀어 나오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결국 사람 다똑같아..ㅎㅎㅎ 하며 웃어버리게 되더라는 것. 그리고 아침마다 알베르게에서 출발할 때 걱정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날 갈 길을 짚어보며 여기쯤에서 아침을 먹고 화장실도 가야지! 하는 나름의 계획을 세우지만, 혹시 불시에 신호가 온다해도 적당히 해결할 수 있을거야~ 하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부피가 크지 않은 휴대용 티슈는 항상 챙겨 다녀야 한다.
장이 좋은 편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항상 외출 전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나감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지하철 화장실로 뛰어 든다. 최소 5킬로, 길게는 17킬로 화장실이 없는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은 순례길을 갈까 말까 고민한 가장 큰 현실적 어려움 중의 하나였다. 과연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길에서 실례를 한다면 평생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 온갖 고민을 했었는데, 군중심리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것이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이런 상황을 겪고 있고, 그저 밥먹는 것과 같은 특별하지 않은 일이라고 여기는 듯 하니 나도 더 이상 신경쓰게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은 순례길이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종류의 환경오염이 골치가 되어 가고 있다 한다. 길에서 밟으며 으...하던 말과 소의 배설물과 똑같은 인간의 배설물이 더 나쁜 것은 뒤처리를 하느라 다른 이물질까지 더 버리기 때문이란다. 맞는 말인것 같다. 어디 숨어서 일을 보고 사라지니까 찾아서 치울 수도 없고 곤란한 문제일 것 같은데, 그렇다고 몇킬로에 하나씩 이동 화장실을 세우는 것도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순례길 루트가 워낙 많고, 프랑스길은 공식적인 루트 길이만 775킬로미터라 3킬로에 하나씩 세운다 해도 280여개를 세워야 하는데, 그 구간이 평지인 곳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이지도 않고, 화장실 관리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인간은 가는 곳마다 문제를 만드는 종족이란 생각이 순례길 걸으며 많이 들었다.
순례길의 알베르게나 바는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화장실을 쓰는 것에 예전에는 너그러웠다는데,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화장실 이용에 인색?해 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산티아고에 가까와질 수록 바나 식당에 들어가 보면 화장실만 이용할거면 돈을 내거나 뭐라도 사라는 안내문을 자주 보았다.
난 휴식 겸, 들르는 곳마다 커피나 쥬스를 한잔씩 마시고 점심을 사먹기도 해서 화장실을 돈 내고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순례길이 상업화되면서 일어나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모습에 씁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