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 6일 차
체리. 물 2.08
소시지, 맥주, 요구르트 1.98
점심 5.20
소독약 6.50
엽서 1.50
우편료 1.30
숙소 5.0
오늘은 에스테야에서 쉬기로 함. 발가락이 너무 붓고 상태가 심각해서 등산화를 신을 수가 없다. 오늘 하루 좀 괜찮아져야 내일 걸을 텐데 걱정이다.
아침에 일어나 짐 싸고, 모니크 부부에게 오늘 여기 있을 거라 했더니 모니크가 주머니에서 1.5센티 크기의 걱정인형을 꺼내더니 내게 준다. 베개 밑에 두고 자라며. 너무 배려 깊고 착하다.
아침 먹으려고 어제 산 인스턴트 죽을 데웠다. 동봉된 수프와 기름을 넣고 물을 부어 렌지에 5분 돌리면 된다. 쌀이 익을 거 같지 않게 생겼지만 대충 먹을만했다. 먹고 있으려니 둘이 오길래 주스와 요구르트, 천도복숭아를 줬다. 하루 종일 가지고 다니기 무거우니 먹어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 했더니 안드레가 그런 이유라면 좋다며 먹었다. 착한 사람들. 끝까지 인사 몇 번이나 하며 그들은 길을 떠났다. 언젠가 길에서 또 만나겠지? 만날 수 없다 해도 늘 내 기억 속에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니 왜 눈물이 나려 하는지 모르겠다. 감동인가 이런 게.. 나같이 실제 사람 관계에서 메마른 인간이 눈물이 나다니. 진심이 통한다는 건 진짜인가 보다.
8시에 알베르게를 나와 거지 같은 몰골로 도시를 어슬렁거리다 바에 들어와서 스페인식 오믈렛과 커피를 시켰다. 오믈렛이 바게트 빵 사이에 끼어 있다. 왜!? 맛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전 먹은 시금치 들어간 토티야데파타타가 더 맛있는 듯.
미현씨한테 오늘 에스테야 있다고 가능하면 보자고 카톡을 남겼다. 오바노스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25킬로 정도 걸어야 하는데 발목도 성치 않아 힘들 텐데. 오늘 못 와서 만나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앞으로 며칠 내에 만나게 될 듯 하니. 그리고 정말 못 봐도 산티아고에선 꼭 보자고 했으니까.
어제 안드레가 보여 준 크림이 뭔가 했더니 소독약이었다. 소위 빨간약. 약국 가서 베타디네라고 하니 바로 빨간약(여기는 노란통)을 보여주는데 젤 타입이 있어서 그걸 샀다. 약 사서 광장 벤치에 앉아 바르고 추위에 떨고 있다. 여기 영상 18도, 가을 날씨 ㅠㅠ 엄마의 패딩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하나 고민하다 기껏 보러 간 성당은 어제 지나갔던 곳이고 나머지 한 곳도 별로일 것 같은 느낌. 어차피 오늘 저녁 묵을 곳과 가까우니 지나가는 김에 가보면 될 듯.
에스테야는 딱 한나절 돌아다닐만한 곳이다. 유명한 성당이 세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산 미구엘(미카엘 대천사) 성당. 수리 중이어서 잠깐밖에 못 봤지만 대천사 미카엘 그림카드가 있길래 가져왔다. 순례길 내내 날 지켜주길 기원하면서.
성당 내려와 문구점 비슷한데서 엽서를 샀다. 어차피 시간도 많아서 엄마한테 어디 있는지 알려드릴 겸 엽서를 부쳐야지 하고 우체국을 찾아 뺑뺑 돌다 결국 의심했던 곳, 노란 바탕에 왕관 그림이 있는 곳이 우체국임으로 밝혀졌다. 부산까지 엽서 한 장에 1.30유로. 이거 받으면 엄마 아빠는 좋아하실까 걱정하실까.
오늘 묵을 산미구엘 알베르게에 10분 전에 와서 덜 마른빨래를 널어놓고 1시에 문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오늘 숙소는 도네이션 받는 곳인데 얼마를 달라고 할지, 내야 할지 모르겠다. 알베르게 오는 길에 물과 체리를 샀다. 300그램 좀 넘는데 2천 원이 안된다. 아저씨가 맛보라며 두 개 줘서 안 살 수 없었다. 한국에선 비싸고 농약 잔뜩인 체리 여기선 많이 먹자.
어제 산 에스테야맥주에 감자칩을 먹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카톡도 좋지만 목소리 들려드리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엄마는 곧 가실 북유럽 여행에 마음이 들뜨신 듯, 연신 날씨를 물어보시고 옷을 걱정하셨다. 다행이다. 얼마 전 병원 검진 결과도 이상 없다 하시던데.
네트웍이 안 좋아서 저녁까지 핸드폰 붙잡고 있다 4시 좀 넘어 미현씨가 무니시팔 도착했다는 카톡을 받았다.
6시에 어제 묵었던 공립 알베르게로 가서 저녁 같이 먹기로 했는데 나가자마자 비가 온다. 그러나 심해지면 우비 빌려 입고 오지 싶어 그냥 계속 갔다. 먹을거리 사서 무니시팔에서 만나 저녁 먹고 왔는데 한국인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 신혼여행! 온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와이프가 가자고 해서 따라왔고 이런 줄 몰랐다며 매우 슬퍼하며 체념한 듯 말했다 ㅎㅎㅎ 남편이 참 착하고 무던해서 와이프 얼굴이 환했다. 왜 난 그런 남자를 보는 눈이 없을까?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난 허영심 때문에 성격 좋고 착해도 후줄근한 외관을 참지 못하는 게 문제다..
내일은 06:30에 무니시팔에서 미현을 만나기로 했다. 여기서 20분에는 나가야 하니 5시 좀 넘어는 일어나야 아침을 먹고 갈 수 있다. 9시 반에 약 먹고 바로 자야지.
모니크와 안드레는 어디까지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