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우리 남편은 초능력이 있는 것 같다.
데드라인이 코 앞에 닥칠수록 무슨 일이든 잘 해내는 능력이 있다. 나 같으면 초조해서 안 하던 실수마저 할 것 같은데 어찌나 집중력이 좋은지 정말 잘도 해낸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는 나는 내내 조마조마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해냈다며 해맑게 웃고 있는 그를 보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온다. 그럼에도 문이 닫히기 일보직전인 기차를 아슬아슬하게 타는 상황 같은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지만 말이다. 예전엔 전혀 몰랐다, 남편이 가진 이 초능력에 이름이 있다는 걸 말이다. 그의 뇌는 한번 가동되기 시작하면 hyperfocus 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데드라인 (deadline): 마감시간
*hyperfocus (하이퍼 포커스, 과몰입): ADHD를 가진 사람이 특정 활동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시간과 주변 환경을 잊어버리는 상태
남편은 계획대로 착착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요새 유행 하는 mbti 식으로 얘기하자면 나는 J(계획형) 남편은 P(즉흥적)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남편을 전형적인 P라고 놀려대면 자기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해 두며 움직이는 거라고 변론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매번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 발생해 버린다. 연애 때부터 이런 모습을 10년도 넘게 지켜본 나는 언제나 남편이 참 느긋한 사람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좀 엉덩이가 무겁고 게으르다고 생각해 왔다.
불안도가 높은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걸 싫어하지만 남편은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연애 시절에도 나는 혹시 배탈이 난다던지 지하철이 늦게 온다던지 하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집에서부터 일찌감치 준비하고 출발해서 약속장소에 도착하고는 했다. 하지만 남편은 정시가 지났는데도 코빼기도 안 보이는 일이 허다했다. 20대의 풋풋한 연애 중 이렇게 늦는 모습은 당연히 날 서운하게 했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난 시간약속에 있어 박한 편이라 상대가 누구라도 딱 세 번만 참아주는 편인데 그땐 콩깍지가 씌었는지 대충 넘어가주었다. 평소 하도 착하고 다정한 남자친구였기에 시간약속에 있어 철두철미 하지 못해도 그저 좀 느긋하고 어리바리 한 사람이려니 하고 말이다. 게다가 매번 헐레벌떡 달려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땀을 뻘뻘 흘려대니 용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기행에 가까운 여러 일화가 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신혼 때의 일인데 지방에 사는 우리는 서울로 놀러 갔다가 기차를 타고 내려온 상황이었다. 땡볕인 여름날 우리는 역 주차장까지 헉헉대며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갔다. 남편은 차 문을 열고서는 이제 혼자 트렁크에 짐을 다 싣겠다며 먼저 타라고 하길래 나는 흔쾌히 탔다.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짐 체크를 한번 더 하지 않은 채 뒤도 안 돌아보고 탄 것이 화근이었을까. 집에 도착해 보니 남편의 캐리어가 없었다. 그 캐리어 안에는 남편이 가장 아끼는 옷이며 모아둔 현금까지 들어 있었는데 말이다. 수소문을 해보아도 이미 남편의 캐리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트렁크 문을 열고 짐을 그저 싣기만 하면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걸 깜빡할 수 있는 걸까. 더 믿기지 않는 건 나 같으면 자책을 하고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을 텐데 남편은 결론적으로 본인이 실수한 일이고 어쩔 수 없다며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저 사람은 바보일까 천재일까. 남편의 특이한 성격으로 보이는 이런 특징들이 사실은 ADHD의 증상이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연애할 때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함께 살면 살수록 오랜 시간 한 공간에 있어서인지 남편의 산만함이 크게 두드러져 보였다. 예전의 내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난 청각적으로 예민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번잡스러운 상황에서 감각적인 과부하에 걸릴 때가 많다. 그런데 남편은 꼭 일부러 이런 나의 예민함을 자극시키는 것처럼 행동하고는 했다.
단둘이 살던 신혼시절 컨디션이 안 좋아서 잠깐 침대에 누워 쉬다가 나와보면 현관에 뜯다 만 택배상자 여러 개가 늘어져있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화장실 발매트 위에는 새로 채워두려 한 듯한 두루마리 휴지가 듬성듬성 올려져 있었고 식탁에는 하드 껍데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소파 위에는 벗어 둔 잠바가 걸려 있고 회사 서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도 했다. 나도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 큰 성인으로서 이건 아니지 않나. 이게 다 뭐냐고 남편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서 찾아보면 잠들어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건가.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건가. 남편의 어수선함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대화를 해봐도 근본적인 산만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도 본인이 왜 하나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로 다른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미안하다며 바뀌려는 노력을 많이 했지만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마음먹고 정리정돈이나 청소를 하면 나보다도 훨씬 더 꼼꼼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었단 거다. 빨래 하나를 접어도 각이 잡히게 접고 화장실 청소를 한번 하면 온몸이 다 흠뻑 젖을 정도로 빤짝거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툭하면 난장판을 해놓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외벌이였고 내가 전업주부였으니 살림으로 귀결되는 문제는 어쨌든 내 몫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대화가 잘 통해서, 소울메이트라서 결혼을 한 우리인데 가면 갈수록 말이 안 통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과에 대해 얘기를 하면 남편이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내가 하던 얘기를 다 잘라먹고 자기가 먹어본 사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더 황당한 건 사과 이야기의 결론의 나기도 전에 갑자기 바나나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얘기를 다 하지도 못한 건 둘째치고 사과와 바나나 얘기 두 개를 머릿속에서 이어보려 애를 썼지만 말이 되지 않았고 남편에게 물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라고 한다던지 "아냐 둘이 연관된 얘기야" 라며 내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장황한 말을 하고는 했다. 저 사람이 일 때문에 힘든가 보다, 잠이 모자라서 그런가 보다, 오죽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저럴까라고 생각하며 이해를 해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있었다.
그래도 둘이 살 때는 신랑의 이런 모습에 정신이 산란할 때면 나 혼자 책을 읽기도 하고 운동을 가기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한숨 돌리면서 지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나의 내면이 재정비되면 주먹구구식이라도 둘이 어떻게 잘 살아왔던 것 같다. 둘 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카페를 가는 게 취미였던 우리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가치관도 잘 맞았기에 알콩달콩한 나날을 보낼 때가 더 많았다.
문제는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고요함 그 자체가 필요한 외골수 성향에 불안감이 높은 내게 24시간 돌봐야 하는 연약한 생명체가 생겼다. 육아를 하며 나는 매일 출동 대기조가 된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이게 된 반면 남편은 여전히 참 느긋했다. 그렇게 초보맘의 애가 타는 와중에 남편은 젖병 하나를 씻으러 갔다가도 딴짓을 하고는 했다. 아기는 배가 고파 울고 나는 아기를 안고 달래며 이해가 안 돼서 있는 대로 화가 나고 남편은 어리둥절해했다. 점점 남편은 옹달샘 동요에 나오는 토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아니 세수를 하러 갔으면 세수를 할 것이지 왜 물만 먹고 가?
계획형 인간인 나는 짜인 대로 사는 게 편하고 목표지향적인 만큼 변수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물론 나도 나이가 들며 좀 더 유연해지기도 하고 남편과 살며 그 느긋함에 물들어 어느 정도 융통성이 생겼지만 그래도 아기 키우면서 이러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상황에 말 그대로 남편 때문에 열받는 일이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남편은 진심으로 본인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하니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식의 답답함이 반복되니 이 사람이 일부러 나를 약 올리나? 시비를 거나? 싶은 날도 있었다.
부부관계에 금이 가는 베스트 3으로 뽑히는 문제는 술, 도박, 바람일 텐데 우리 남편은 그런 문제와는 정말 머나먼 사람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하나하나 말하기 어렵고 설명해 봤자 이해 못 할 실생활적인 고충 때문에 너무 지쳐만 갔다. 가끔 주위에 하소연을 해봐도 그저 남자들은 다 그런 면이 있다며 통상적인 얘기를 들려줬는데 내가 느끼는 힘듦과는 결이 다르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내 답답함을 표현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고 내가 너무 그의 단점에만 몰입돼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평소 남편은 웬만하면 내가 하자는 대로 다 맞춰주고 나를 아껴주는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나도 나의 부족한 면을 돌아보며 맞춰가려는 노력을 지속해 갔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입차 시 "세대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고 인터폰 알림이 뜨는데 남편은 퇴근길에 이 알림과 함께 도착을 한 뒤에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데까지 한참 걸리고는 했다. 주차를 한 뒤 갑자기 차 청소를 하기도 했고 일 문자 하나를 보려다가 인터넷 서핑을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남편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너무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하기도 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보기도 했지만 결혼 몇 년 뒤엔 그냥 '오늘 안엔 들어오겠지' 하고 넘기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
이렇게 나를 해탈하게 만든 남편은 수에 빠르고 머리회전이 좋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간단한 일도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말이 1.5세 캐네디언이지 성미는 전형적인 빨리빨리의 한국인 그 자체인 나를 시험에 들게 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빨랫대가 고장이 나서 좀 버려달라고 하면 집안에 있는 모든 쓰레기와 분리수거를 모아 한꺼번에 버리려고 현관 밖을 나서는 게 지체되고 또 지체됐다. 그러다가 만약 어릴 적 앨범이라도 발견하면 아니나 다를까 추억여행을 하고 있으니 나는 정말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앓느니 죽지.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차라리 버리러 나가기가 싫으면 솔직하게 말을 하라고 화를 내며 빨랫대를 끌고 나갔다. 또 다른 예로는 만약 내가 음식을 하다가 참기름이 떨어져서 슈퍼에 가서 좀 사다 달라고 하면 나가는 김에 다른 볼일들을 보거나 슈퍼 구경을 하느냐 얼른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일들을 하도 많이 겪다 보니 나중에는 뭐 하나 부탁을 하면 또 함흥차사가 될까 봐 두려워서 아무 말 않고 혼자 무거운 가구도 끙끙 옮기고 최대한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하게 되었다.
게다가 꽤나 안정적으로 살던 우리에게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이 내려진 것도 모자라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 위기마저 찾아왔고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유한 남편임에도 스트레스 레벨이 점점 올라가며 원래는 잠귀신인 사람이 숙면을 취할 수 없었고 그래서인지 그의 건망증은 더 잦아지고 작은 일처리도 제 시간 안에 해내지 못했다. 원래도 한번 외출을 하려면 깜빡한 게 있어서 집에 두세 번은 들렀다가 나가는 사람인데 이런 증상은 점점 더 빈번해져만 갔다.
그래서 우리는 상의 끝에 긴가민가 하던 ADHD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우리끼리만 사는 것도 아니고 함께 한 아이를 그것도 좀 느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부모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얼른 조치를 취해야 할 테니 말이다. 남편은 정신과에 검사를 잡아놓고 검사날 제출 해야 하는 몇백 개의 문항이 있는 검사지를 받아왔는데 시작도 전에 막막해했다. 나는 남편을 앉혀놓고 농담반 진담반식으로 시험장의 선생님처럼 남편을 감독했지만 결국 그는 그날 앉은자리에서 작성지를 다 끝내지 못했다. 그래도 당장 검사를 받는 건 아니니 그때까진 다 해서 제출하겠지 싶었는데 결국 검사날 병원 대기실에서 허겁지섭 작성을 끝내고 겨우겨우 제출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작성지 자체가 ADHD 테스트인 게 아니냐고 이미 확정인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결과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검사결과가 나왔고 그는 마일드한 성인 ADHD로 판명이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분명 증상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시어머니의 철저한 스케줄 관리 아래 잘 조절이 되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는 큰 스트레스 없이 마음 편하고 유복하게 살았기에 악화될 일이 없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마일드(mild): 경미한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 아빠는 ADHD, 엄마인 나는 신경다양성의 어느 선상에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우스갯소리로 뭐가 정상인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도 이런 우리가 참 웃프다. 그래서 우리 얘기를 하다 보면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음이 날 때가 있다. 평범한 게 제일 어렵다고 이렇게 특이한 우리 셋은 평범하게 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우리의 모습을 한탄하거나 절망스럽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어서 참 좋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은 아닐지 몰라도 이제라도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됐음에 감사하다. 더 이상 느린 남편을 답답해하지 않아도 되고 나 자신을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우리 아이를 보며 얘는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하며 저울질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세 식구는 남들은 모르는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이에 오해 대신 이해가 자리 잡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남편은 "차 키, 지갑, 핸드폰!"을 외치며 깜빡하는 것이 없게끔 눈물겨운 노력을 하며 문밖을 나서고 아이는 “바이”라고 짧지만 씩씩한 인사를 하며 유치원 특수반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등원시킨 후 이렇게 고요함을 즐기며 글을 쓰고, 영어 레슨도 준비하며 설거지를 하고 흥얼 거린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조용필-그 겨울의 찻집)
아이가 태어나고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우리 세 식구는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 왔다. 우리는 서로를 참 많이 눈물짓게도 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해 주고 웃게도 했다. 우리가 쌓아온 그 시간 속에서 사람도, 사랑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때론 눈물이 앞을 가려도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