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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Jul 14. 2023

반칙왕을 꿈꾸다

세계적인 대배우가 된 영화배우 송강호.

그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 중에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괴물>, <변호인>, <택시 운전사>, <기생충>으로 네 개나 된다. 5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도 13개로, 누적 관객 1억 명을 돌파한 최초의 한국 배우이다. 흥행 성적만 좋은 것이 아니다. 2019년 <기생충>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2022년에는 <브로커>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대배우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고 단역과 조연을 전전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조연이던 시절에도 <초록 물고기>와 <넘버3>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어 곧 주연 연기자로 발돋움했다. 그의 첫 주연작은 2000년에 개봉된 <반칙왕>으로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그의 팬이 되었다. 이후 완성도가 높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작품도 많이 있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송강호의 영화는 <반칙왕>이다.



<반칙왕>은 무기력하고 소심한 은행원이 레슬링을 통해 변해 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그는 매일 지각에 실적도 가장 낮아 부지점장에게 찍혔고, 복도에서 목조르기를 당하는 등 보잘것없는 현실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퇴근 후 레슬링을 배우기 시작했고 프로 무대에 오를 기회까지 얻게 된다. 비록 레슬링 프로모션을 위해 실력이 아닌 반칙을 주로 하는 “반칙왕”의 캐릭터를 해야 했지만... 그러나 대회를 위해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잃었던 활기를 되찾고, 자신에게도 꿈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매일 구박만 받던 그의 일상도 변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무대에 오르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시합할 때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 여기서만큼은 내가 왕이다.
링 위에서만큼은 누가 뭐래도 왕이다."


23년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직장 생활을 막 시작했던 참이었다. 넘치는 의욕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퇴근 후에도 일본어 공부 등 자기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나름 잘 나가고 있던 터라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퇴근 후에 레슬링이라는 탈출구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저 코믹한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재미있었고,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내는 그 모습처럼…’ 등의 배경음악이 잘 어울렸던 것이 좋았다. 분명 이게 다는 아니었을 거다. 음악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지질한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는지 <반칙왕>은 코미디 영화라기에는 좀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뭔지 모를 아련함과 찌릿함으로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결국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로 남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도 일탈 또는 이중생활에 대한 욕구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로부터 23년이 지나는 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고 변화를 거쳐왔다. 영화를 보고 나서 꼭 2년 뒤에 나는 한국을 떠나서 안티구아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살면서 드디어 “퇴근 후”의 삶을 갖게 되었다. 프로 레슬러처럼 극단적인 변신은 아니었지만 일이 끝나면 야근도 자기개발도 아닌 “파티걸”로 변신해서 비치로 클럽으로, 친구들의 파티로 놀러 다녔다. 한국의 친구나 동료들에 비해서 뒤쳐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쓸 데 있는 일만 하면서 살 수가 있을까. 쓸모가 있는지 없는 지의 관점으로만 보자면 예술도 사랑도 우정도 모두 쓸데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돈벌이가 안 되는 예술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사랑도 하면서 산다.

그렇게 놀다가 지겨워졌을 때쯤에 나는 대학원에 갔고, 졸업 후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회사를 다녔다. 아무리 외국계 회사라고 해도 한국은 한국.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면서는 외국에서 일할 때만큼 자유로운 퇴근 후의 삶을 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업무와 자기개발에 도움이 안 되는 이른바 “쓸데없는” 일들로 퇴근 후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기왕이면 ‘금융회사의 마케터’라는 이성적이고 딱딱한 일과는 반대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뮤지컬 등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고, 춤을 배우기도 하고 여행을 즐겼다.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딱히 퇴근 전, 후의 삶을 구분할 수 없지만 여전히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할 때의 이성적인 나와 쓸데없는 일을 할 때의 감성적인 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유지하고 싶다.

소심한 은행원이 링 위에서는 “반칙왕”이 되었던 것처럼, 나도 글을 쓰고 강의를 할 때는 오타와 비문이 없는 글을 쓰고, 막힘 없이 강의하는 전문 강사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빈틈이 많은 요리사와 파티 플래너가 되고, 무대에서는 댄서가 되어 춤을 추고, 낯선 곳에서는 방랑자가 되는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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