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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Jul 20. 2023

살인을 하고 벗어나는 법

How to get away with murder

How to get away with murder (살인을 하고 벗어나는 법)


다소 도발적으로 들리는 이 문구는 내가 한 때 즐겨 봤던 미국 드라마의 제목이다. 명문 대학 로스쿨의 카리스마 넘치는 형법 교수이자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는 변호사와 그녀의 제자 중에서 뽑힌 인턴 다섯 명이 우연한 살인 사건에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범죄 스릴러 드라마이다. ‘How to get away with murder’는 극 중 그녀의 형법 수업의 부제이기도 하다. 시즌 전반에 걸쳐 2-3개의 서로 연결된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큰 이야기에 각 에피소드마다 법률 사무소에서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잘 나가는 변호사답게 매 사건을 거의 승소한다.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원제와는 좀 거리가 먼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범죄 수사물의 팬인 나는 모든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봤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가족이 가장을 죽인 사건을 다룬 편이다. 복잡한 치정사건으로 얽히거나 엽기적인 사건이 아닌, 어찌 보면 흔하게 일어나는 가정 폭력 사건인데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건 당시에 비슷하게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을 다룬 한국 드라마를 보고 두 사건과 그 결과가 비교가 되어서였다. 

그때 봤던 한국 드라마는 ‘이것은 실화다’라는 법정 드라마. 한 종편 방송에서 했던 드라마이다. 제목처럼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법정 판결문을 기반으로 사건을 재연하고 법정 다툼을 보여줬다. 비교가 된 에피소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죽인 실제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아내는 징역 5년형을 받았다. 결혼 직후부터 25년간 남편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던 아내는 그러다가 본인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였다. 하지만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그 순간이 아니라 남편이 자고 있을 때 목을 졸라 죽였다는 이유로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남편이 칼이라도 휘둘러서 1분 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그때 그 칼을 빼앗아 반대로 남편을 죽여야 정당방위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는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죽일 경우, 정당방위로 무죄가 된 케이스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한편 미국 드라마에서는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보며 자라던 십 대 아들이 어느 날 아빠가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아빠를 총으로 쏴서 죽였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가정폭력에 대해서 엄격한 미국에서 왜 신고를 하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는 방법을 택했을까? 배심원들은 이 점을 의아해했는데, 문제는 아빠가 경찰이었다는 것. 신고를 하면 동료 경찰들이 와서 아빠의 말만 듣고 별일 아니라 생각해서 돌아가고, 이럴 때마다 아빠의 폭력 성향은 점점 악화되었다. 그러다 아들은 결국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다. 아빠가 경찰이라는 점은 재판 중에도 크게 영향을 끼쳐서 경찰 동료들의 불리한 증언들이 이어지고 아들은 유죄 판결을 받을 지경에 이른다. 이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한 한 인턴이 의도적인 실수로 배심원 중 한 명에게 문제를 일으켜서 재판 무효 선언을 이끌어 낸다. 새로운 배심원을 구성해서 다시 재판을 시작해야 하지만 경찰에 대한 불신과 아들에게 동정을 보내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를 의식한 검사가 부담을 느껴 재판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아들을 미성년자로 취급해 사회봉사 등의 벌로 양측이 합의하는 걸로 사건은 마무리된다. 



살인사건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할 수는 없다. 두 사건의 가해자들은 남편(아빠)을 죽이기 전에 다른 정당한 방법을 찾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가정 폭력은 가정 내 문제로 여겨져서, 신고 후에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 머물러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럴 경우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질 게 뻔한데, 누가 쉽게 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미국 드라마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아빠가 경찰이라는 특수 케이스였다. 신고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좌절감, 이러다가 내가(또는 엄마가) 죽을 거라는 공포감 때문에 그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럴 경우에도 다른 살인사건과 같은 살인사건으로 다루는 것이 정말 “공평한 법의 집행”일까?

법은 (약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법논리다. 그런데 재심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약자의 편을 드는 법 집행”이 일률적으로 공평한 법 집행에 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때로는 법 자체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은 만들어질 때부터 강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이고, 국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집단) 일 경우가 많다. 박변호사는 이런 사실을 지적하며 ‘공평한 법 집행이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내가 강할수록 법은 유리한 룰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법이 ‘때로는 약자에 맞춰 해석하고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이 주인인 사회의 법과 제도의 목적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법은 공정해야 하지만 또 정의로워야 한다. ‘법을 지키고 살아도 법에 의해서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란 생각이 일반적이 되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늘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 오히려 “사이다”라며 칭송받기도 한다. 하지만 끝 맛까지 시원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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