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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Sep 05. 2023

구슬을 보배로 만들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값어치가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과 2년 이상 같이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그동안 쓴 글이 많아졌다. 처음에 문장도 제대로 못 만들던 아이들이 어느덧 꽤 그럴듯한 수준의 글을 쓰고 있었다. 혼자 읽고 감탄하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글을 좀 더 가치 있고 쓸모 있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글이 책으로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글이라고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지금도 구슬처럼 훌륭한 아이들의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들면 정말 보배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의 첫 책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보배를 만들려면 많은 구슬 중에서도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 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이다. 첫 작업으로 아이들에게 책에 넣고 싶은 글을 고르도록 했다. 그동안 쓴 글은 독후감이 가장 많았다. 그 밖에도 <어린 왕자>의 경우와 같이 후속 편을 상상해서 쓴 2차 창작이나 여행, 가족, 꿈 등 특정 주제에 대해 쓴 에세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처음에 어설프게 썼던 글보다는 최근에 쓴 잘 쓴 글을 골랐다. 하지만 그동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초기에 썼던 글도 몇 개 포함시켰다. 글을 선택한 후에는 다시 읽어보고 리뷰하는 작업을 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지만 그래도 틀린 문장이 너무 많으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출판을 앞둔 작가들처럼 진지하게 리뷰를 하며 글을 다듬었다.

리뷰를 마친 후 각 글에 맞는 이미지를 직접 찾는 일도 아이들의 몫이었다. 영어로 쓰인 책이다 보니 글만 있다면 읽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이해를 도울 수 있게 모든 글마다 이미지를 한 개씩 넣기로 했다. 직접 찍은 사진이나, 사진이 없을 경우는 어울리는 이미지를 웹에서 찾았다. 

글과 이미지가 완성됐으니 이제 판형에 맞게 편집과 디자인 작업이 남았다. 아직 문서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라 편집은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대신 표지 등 디자인은 가급적 아이들의 의견을 따랐다. 제목도 스스로 짓도록 했다. 지훈이는 “My English Travel”, 혜성이는 “The Collection of My English Writings”라는 멋진 제목을 지었다.


표지와 목차, 본문 편집을 마치자 얼추 책의 모습을 갖췄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책을 한 번 더 읽어본 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작가 소개를 쓰도록 했다. 처음에 자신들의 글을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반신반의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량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이런 걸 왜 하냐?’며 투덜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진짜로 책의 모습을 갖추는 걸 보자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나 보다. 아이들의 에필로그에는 책을 마친 작가들의 소회 마냥 진한 감회가 담겨있었다. 어찌나 진지하던지 나도 울컥할 정도였다. 

인쇄업체에 넘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리뷰를 했다. 아직도 오타가 발견되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한 번도 고치고 싶었지만 마냥 고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던 끝에 ‘전송’ 버튼을 눌렀다. 후련했다. 이제 며칠 뒤면 아이들은 첫 책을 출간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겠지. <My English Travel>과 <The Collection of My English Writings>는 어떤 책이 되었을까? 



그림 출처: https://www.alibaba.com/product-detail/Custom-size-colored-glass-marble-ball_16004631105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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