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거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진짜로 알고 있을까?
코끼리를 집어삼킨 보아뱀 그림, 왕자와 장미의 사랑, 이상한 어른들이 사는 여러 작은 별 여행과 여우와의 우정 등 몇 가지 유명한 장면은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왕자가 사막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고향 별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고 있는가? 어쩐 일인지 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어린 왕자>를 읽었는데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너무 어렸을 때 읽어서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책으로 유명한 <어린 왕자>. 이번에는 아이들과 영어로 쓰인 <The Little Prince>를 읽기로 했다.
쌩떽쥐베리는 프랑스인이지만 그는 <The Little Prince/ Le Petit Prince>를 프랑스가 아닌 뉴욕에서 썼다. 처음부터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후에 프랑스 원서를 영어로 번역한 여러 버전이 출간되었다. 우리는 영국인 번역가 Irene Testot-Ferry가 번역하고 영국 출판사인 Wordsworth Editions에서 출간한 Wordsworth Classic으로 읽기로 했다. Wordsworth Classic의 장점은 중, 고등학생들이 읽기에 적당한 단어와 문장, 표현을 이용한 번역과 편집이다. 또 다른 장점은 그림이다. 요즘 출판되는 어린 왕자 중에는 일러스트가 컬러풀하고 화려한 책이 많다. Wordsworth Classic은 쌩떽쥐베리가 초판에 그렸던 그림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래서 마치 실제로 그림 공부를 어렸을 때 그만둔 어른이 그린 것처럼 정감 있고 묘한 매력이 있다. 다소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화려한 그림보다 우화의 느낌이 잘 살고 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글씨가 좀 작고 줄간격이 좁아서 가독성이 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가 쉽게 술술 읽히기 때문에 그 정도 단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내용을 요약한 동화책을 읽었기 때문에 줄거리와 등장인물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원서로 읽다 보니 화자와 왕자의 상세한 심리 묘사 등을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다고 했다. 특히 혼자 사는 왕, 술에 취한 사람, 비즈니스 맨 등 어른을 풍자한 부분을 읽으면서 동화책을 읽을 때와는 다르다며 재미있어했다. 영어로도 풍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그 사이에 많이 성숙했다는 걸 느꼈다. 또한 동화책에는 없었던 내용 – 장미 정원이나 알약을 파는 상인과의 대화 등 – 도 힘들어하지 않고 읽는 걸 보니 독해력도 많이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어린 왕자가 그가 살던 B-612호로 돌아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을 보여주는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다소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아마도 동화책에는 생략되어 있거나 아주 완곡하게 표현되어 있었나 보다. 우리가 읽었던 책에도 아주 직접적으로 죽음에 대해 묘사하고 있지는 않아서 처음에는 이해를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읽다가 무엇을 놓친 것인지, 자신들이 이해한 게 맞는지 몇 번을 묻고 확인할 정도였다. 스스로 해석한 결말의 충격에서 벗어나자 많이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용도 슬펐지만 이제는 이런 결말을 받아들일 만큼 성장했다는 것도 슬픈 것 같았다. 아직은 해피엔딩이 더 익숙해서일 테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반드시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보통은 줄거리 요약에 본인의 느낌이나,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등을 쓰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쓰기로 했다. 책이 끝난 부분에서 쌩떽쥐베리에 빙의해 <어린 왕자 2>를 써보라고 했다. 결말의 슬픔과 충격이 너무 커서였는지 아이들도 좋아했다. 소위 2차 창작이라고 하는, 인터넷 소설 중에서도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은 분야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별로 돌아간 어린 왕자에게 일어난 일을 상상해서 쓰기로 했다. 무거운 육신을 버린 채 영혼만 돌아간 왕자는 사랑하는 장미와 재회했을까? 장미는 그때까지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비행기 조종사는 아직도 하늘의 별을 보며 왕자를 그리워할까?
어린 왕자 그 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림 출처: https://variety.com/2015/film/festivals/the-little-prince-cannes-review-1201503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