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영어로 영화를 가르치는 지인이 있다. 영어로 하는 수업이니 당연히 과제도 시험도 모두 영어로 써야 한다. 어느 날 지인이 수업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는 걸 들었다. 가장 힘든 점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수업 준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학생들의 과제와 시험을 리뷰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 훨씬 힘들다고 했다. 그 작업을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라고 했다. 또한 내용이 아니라 잘못 쓴 문법과 표현을 고치다 보면 영화를 가르치는 건지, 빨간펜 선생님이 된 건지 헷갈리면서 자괴감이 든단다.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니 기본적인 영어 실력이야 당연히 좋을 거다. 읽기는 물론 알아듣기도 잘하고 말도 웬만큼은 한다. 그런데 유독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기본적인 문법을 많이 틀린다고 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틀리는 기본 문법은 ‘관사, 즉 a(an), the’라고 한다. 그 밖에도 명사의 단수, 복수와 이에 따른 동사의 일치를 틀리게 쓴다고 했다. 문법 “시험”으로 봤다면 아마도 당연히 모두 맞는 답을 고를 실력의 학생들인데도 실제로는 많이 틀렸다. 이렇게 쉬운 걸 틀리는 건 우리말에는 없는 문법이라 그렇다. 우리말에는 관사가 없고, 명사의 단수, 복수도 없다. 그렇다 보니 영어로 글을 쓸 때도 생각하기 힘들고 틀리기 쉽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문장은 곧잘 만들고 전체적인 흐름도 괜찮았지만 계속해서 틀리는 부분이 있었다. 관사와 명사의 단, 복수도 그중에 하나였다. 2차 시험은 같이 가서 리뷰를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처음부터 이런 부분을 신경 쓰다 보면 글이 안 써질 수 있다. 때문에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다 쓴 후에 아래 내용을 떠올리며 검토를 하도록 지도했다.
* Writing 이 끝난 후 점검할 사항
1. 관사를 정확하게 썼는지 확인
2. 명사의 단수, 복수를 정확하게 썼는지 확인
3. 동사의 시제(현재, 과거, 현재완료, 미래 등) 확인
4. 동사의 시제가 현재일 경우 수와 인칭이 일치하는지 확인
5. 동사의 태(수동태, 능동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
6. 대문자/ 소문자 구분
7. 문장부호(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확인
3 번과 7번을 제외하면 모두 우리말에는 없는 문법이다. 대학생들도 자주 틀린다는데 초등학생들이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체크 포인트를 외우고 꼭 실천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가르쳤다.
드디어 대회 당일. 마침 나는 꼭 참가해야 하는 워크숍이 있어서 시험장에 함께 가지 못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나도 내내 긴장이 되었다.
‘끝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생각이 들 때쯤 시험을 마친 지훈이가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수고했다는 격려와 더불어 점검 사항을 제대로 시행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도 모두 기억해서 고쳤다고 했다. 스스로 리뷰를 하고 틀린 부분을 잡아 내서 고쳤다는 것만으로도 대회에 참가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의 도움 없이 혼자서 글을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얼마 뒤에 둘 다 동상을 수상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식을 듣자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비록 가장 작은 상이긴 했지만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더 큰 기쁨은 며칠 후에 있었다. 상이 학교로 도착했고, 친구들 앞에서 상을 전달받았다고 했다. 불과 1년 전에 ‘친구들보다 영어를 못해서 창피하다’며 울었던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 지훈이는 “기분이 좋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라고 그날의 기쁨을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웠다”라고 했다. 첫 번째 대회 참가는 목표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이뤘다.
그림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search/2/image?phrase=kid+throwing+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