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하 Aug 24. 2023

시합은 나의 힘 1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을 계속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가? 뭔가를 꾸준히 그리고 잘하고 싶을 때 나는 대회에 참가한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 벌써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 그만둘까 싶었다. 그때 운동하던 공원 입구에 2주 정도 뒤에 열리는 지역 마라톤 대회 홍보 배너가 보였다. 마라톤 대회는 풀코스만 있는 줄 알았는데... 5km 분야도 있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때 나는 2km 정도 달리고 있었지만 뭔 자신감인지 2주 안에 5km 정도는 달릴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아니 5km를 목표로 연습하기로 다짐하고 대회에 신청했다. 매일 150m씩 늘리면 안 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야무진 계산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회 전날까지도 5km를 뛰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참가에 의의를 두자." 

라는 생각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나는 완주는 물론 30분 안에 들어오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시합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벨리 댄스를 하며 수준을 높이고 싶을 때도 그랬다. 이제 겨우 초급을 벗어난 상태에서 언감생심 무슨 대회일까 싶었지만... 선생님의 권유에 넘어가 '한반도의 배꼽'을 자처하는 양구에서 열린다는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버렸다. 일단 대회에 접수를 해 놓으면 하기 싫어도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 한편 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힘든 연습과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문에 대회 당일까지도 접수를 한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완주를 못 해서, 또는 무대에서 망신당하는 미래의 자신을 불쌍히 여겨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연습을 하게 된다. 대회가 끝나고 난 뒤의 후련함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결과에 관계없이 분명히 조금 더 발전해 있다. 다음번에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과 어쨌든 좀 성장한 내 모습을 보며 다시 다음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다. 분명히 또 이런 나를 원망하겠지만… 주로 나와 같은 성취주의자들에게 효과가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아이들의 영어 공부에도 이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같이 공부를 한 지 여러 달이 지나면서 이제 문장을 만드는 데 익숙해졌고 글도 읽을 만한 수준이 되었다. 반면에 반복되는 수업에 점점 지루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뭔가 새로운 긴장감이 필요한 시간이 온 것이다. 대회에 참가하자는 얘기를 하자 아이들은 먼저 부정적 반응부터 보였다. 대회라고 하니 당연히 아이들은 시험을 떠올렸고, 시험은 곧 스트레스와 동의어였다. 하지만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참가에 의의를 두자’는 말로 설득하며 대회에 참가하기로 합의했다. 

학생들의 영어 관련 대회를 찾아보니 꽤 많이 있었다. 상장을 남발하는 돈벌이용 대회도 많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는 눈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주최자가 학교(대학교 또는 외국어 고등학교)로 신뢰가 가고, 수상자의 수를 명확히 표기하는 대회가 좋겠다. 말하기 대회, 토론 대회, 읽기 대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는 글쓰기 중심으로 공부를 해왔으니 당연히 읽기 & 독후감 쓰기 대회를 선택했다. 1차는 온라인으로 참가하고 2차는 시험장에 가서 글을 쓰는 방식이었다. 주최 측에서 선정한 동화책을 읽고 쓰는 건데 우리는 <Charlotte’s Web>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Charlotte’s Web>은 어린이와 돼지, 그리고 돼지와 거미의 우정과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을 다룬 동화책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거미의 목소리를 연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E.B White로 영어 글쓰기의 필수 서적이자 나를 영어 글쓰기의 세계로 이끌었던 수업의 교재인 <The Elements of Style>을 쓴 작가이다. 영작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리는 책을 쓴 사람답게 <Charlotte’s Web>은 내용뿐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가 매우 훌륭하다. 184 페이지나 되는 책을 보고 아이들은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했지만 곧 사랑스러운 돼지 이야기에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미리 여유를 두고 대회에 참가했지만 184 페이지를 다 읽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듯해서 다 읽지 말고 요약을 해 줄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대회 참가는 수단일 뿐, 실제 목적은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정을 경험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정석대로 다 읽기로 했다. 대신에 집중과 효율을 높이기로 했다. 초등학생에게는 다소 스트레스로 느껴질 수 있지만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책을 다 읽은 뒤 온라인으로 독후감을 접수했다. 1차는 당연히 통과했다. 이제 직접 대회장에 가서 글을 쓰는 2차가 남았다. 나의 도움이 없이도 잘 쓸 수 있을까? 어쩐지 아이들보다 내가 더 불안해지는 것 같았다. 



이전 13화 어떤 영어책을 읽어야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