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하 Aug 04. 2023

영어가 제일 싫다는 아이들

지훈이를 처음 본건 6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때였다. 지훈이 엄마는 그동안 지훈이에게 영어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훈이도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다. 5학년 2학기가 끝날 무렵의 어느 날, 지훈이는 학교에서 울면서 집에 왔다. 그날 영어 시간에 시험을 봤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잘 대답하고 다 맞히는 문제를 혼자서 대답하지 못했다고... 어린 마음에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울면서 엄마에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 나도 영어 공부할래.”

지훈이 엄마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고,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공부할 마음을 가진 건 기특했지만, 한편으로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엄마의 교육관 때문에 아이를 방치했던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지훈이는 정말 너무 늦은 걸까?


지훈이의 친구 혜성이도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달랐다. 혜성이는 저학년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단어를 아주 열심히 외웠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몇 년 동안 매일매일 100개씩 단어 시험을 보다 보니 지쳤나 보다. ‘영어가 지긋지긋하고 너무 하기 싫다’는 혜성이의 호소에 엄마는 고민이 됐다. 다른 아이들은 매일 백여 개의 단어를 외우고, 더 높은 반으로 가는데 아이를 쉬게 하기가 불안했다. 하지만 하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가능하더라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억지로 시키는 건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얼마간은 억지로 한다고 해도 영어가 정말 싫어져서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엄마는 혜성이가 학원을 그만두고 쉬게 했다. 이미 첫째의 경험을 통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훈이가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깨달았을 즈음에 혜성이는 이제 충분히 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전에 억지로 단어를 외우게 했던 학원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 둘은 나와 함께 영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 영어를 거의 처음 공부하는 지훈이와 그동안 많이 공부했던 혜성이를 같이 가르칠 수 있을까? 두 아이를 처음 테스트했을 때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지훈이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내용이 혜성이에게는 이미 여러 번 반복한 너무 쉬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둘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둘이 같이 하면 혜성이는 다시 지겨운 영어 공부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친한 친구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훈이는 훨씬 잘하는 혜성이를 보며 자극을 받아 학습 동기를 부여받고 있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크다고 판단되어 둘은 같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둘의 수업은 읽기와 쓰기로 진행했다. 혜성이에게는 쉽지만 지훈이가 너무 어렵지 않게 느낄 책을 찾아 함께 읽기로 했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은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의 작품. 그가 만년에 쓴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이었다. 지훈이에게 다소 어려운 표현이 있더라도, 같은 표현이 여러 번 반복되고, 또 내용을 짐작할 수 있어서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유창하게 읽고 바로 해석을 하는 혜성이에 비해 지훈이는 영어를 읽는데도 우리말로 해석을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혜성이는 비웃거나 지루해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지훈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했다.

“혜성이만큼 잘하고 싶어요.”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또 가장 친한 친구이기에 창피할 수도 있을 텐데 지훈이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얘기했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혜성이만큼 잘할 수 있도록 노력도 했다. 

쓰기는 일상을 쓰는 것부터 시작했다. 첫 숙제로 자신의 가족에 대해 써보라는 숙제를 내줬다. 

아이들에게 영어로 가족에 대해서 글을 쓰라고 하자 꽤나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영어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던 지훈이는 물론 많이 했던 혜성이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였나 보다. ‘가족에 대해 쓸 말이 없다’부터 시작해서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까지 다양한 핑계가 나왔지만 일단 써 보라고 했다. 

다음 시간에 아이들은 숙제를 해서 가져왔다. 예상했던 대로 둘의 글은 고칠 부분이 많았다. 혜성이는 어순과 문장 구조 등 기본은 잘 알고 있는 듯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주어와 동사의 일치, 관사 사용 등은 익숙하지 않아서 틀린 부분들을 고쳐주었다. 지훈이는 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온라인 사전과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서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라 고치다 보면 아예 새로운 문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모든 문장을 거의 새롭게 만들다 보니 지훈이의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보였다. 초등학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쓴 글이 난도질되는 걸 보면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더구나 가장 친한 친구 앞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의 방법이 잘못되었나? 쓰기는 나중에 할까?’ 고민이 되었다. 지훈이의 감정을 달래주기 위해 글을 쓰며 좋았던 점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아빠랑 얘기를 많이 했고,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됐어요.”

아빠가 직장에 다니는 건 알고 있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몰랐더랬다. 지훈이는 아빠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아빠와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훈이의 엄마는 그때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본인의 천직을 찾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아이의 눈에는 엄마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물어볼 기회가 없다가 이번에 작정하고 물어봤다고… 지훈이의 엄마는 아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자 기뻐하며 자세히 말해줬다. 지훈이가 엄마가 하는 일을 진짜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훈이의 엄마에 대한 글은 다음 문장으로 끝이 났다. 

I’m proud of my mom.


글을 쓰는 걸로 영어 공부를 하기로 했을 때 처음에 기대했던 효과는 혜성이에게서 정확하게 보였다. 학원을 다니며 읽기와 단어, 문법을 공부했지만 실제로 사용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쓰기를 하려면 먼저 많이 읽어서 문장 구조와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단어, 문법을 모두 잘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혜성이의 경우가 그랬다. 그런데 지훈이의 케이스는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결과였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가족과 대화가 많아지고 가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엄마의 일에 관심도 없던 아이가 엄마를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방법이 잘못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험난한 길이 되겠지만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그림 출처:  https://bijaysinghworld.blogspot.com/2018/11/homework-extra-burden-to-kids-and-root.html 





이전 11화 왜 나의 영작은 콩글리시 같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