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는 욕심임을 인정하기
우리 회사에서는 4월 5일 식목일 경이면 작은 화분을 나눠준다. 선착순으로 나눠주기 때문에 일찌감치 가서 줄을 서야 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줄을 서서 라일락과 사철 묘목을 하나씩 받아왔다. 싱그러운 초록잎을 삐죽 내민 사철과 이쑤시개처럼 깡마른 가지만 앙상한 라일락. 두 화분의 생김이 너무 달라서 웃음이 나왔다.
“작가님, 작년에 받은 화분은 잘 커요?”
“내가 나무에 주는 영양제를 꽂아놨더니 너무 무럭무럭 잘 커서 잭과 콩나무가 되었는데요, 여름에 깜빡 실수로 말라죽었어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날 보고 있을 거예요. ‘걔네도 죽이려고 가져가니?’ 하면서.”
“대부분 과습으로 죽던데, 작가님은 어떻게 말려 죽이지? 신기하네.”
전수조사를 해보니, 작년에 받은 화분이 아직 까지 잘 자라고 있는 집이 없었다. 키우다가 자신 없어서 엄마 집으로 보낸 사람도 있고, 분갈이해야 하는 걸 몰라서 영양실조로 죽인 집도 있었고, 너무 물을 자주 줘서 과습으로 저세상으로 보낸 이도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또 한 번의 기회! 양손에 화분 하나씩을 나눠 든 직원들의 표정엔 이 아이들은 꼭 살리고 말겠다는 의사의 비장함 같은 것이 묻어났다.
“작가님, 옥상에서 분갈이할까요?”
뭘 좀 아는 직원이 먼저 제안을 해왔다.
“좋지요! 집에서 혼자 하려면 그것도 일인데, 여기서 해 가면 가뿐하지!”
분갈이 계획은 입소문을 타고 돌아, 최종 참여 멤버가 무려 8명이 되었다. 묘목만 16개. 분갈이를 해본 사람은 처음에 분갈이를 제안한 여직원을 포함하여 세 명이었다. 제안한 친구가 솔선수범하여 다이소에 가서 관련 재료들을 넉넉히 구매해 왔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는데 곤란한 기색 없이 척척 알아서 준비를 해주었다. 데이트할 시간도 없을 텐데, 이런 솔선수범이 참 고마웠다.
분갈이 경험자의 진두지휘 아래, 새 화분에 마사토를 깔고, 각자의 묘목을 아기 다루듯이 꺼내어 새집에 안착시켰다. 흙을 담아 꾹꾹 누르고, 물을 주고, 잘 자라라는 예쁜 말을 해주면서 오랜만에 땡볕 아래서도 기미 걱정 없이 즐거웠다.
“근데, 이 이쑤시개 같은 라일락이 꽃을 피울까요? 이렇게 정성스럽게 분갈이했는데, 꽃도 안 피면 속상할 것 같아요. 네일 한 손톱에 흙 껴가며 분갈이한 내 새끼.”
한 시간 남짓 대대적인 분갈이 행사를 끝내고 한 직원이 말했다. 정성스럽게 분갈이한 내 새끼는 너무 소중하다. 같이 분갈이한 다른 나무들보다 더 크고 멋있게 잘 자랐으면 좋겠고, 꽃도 피고 꿀벌도 만나면 좋겠다. 봄볕을 즐기고, 여름 바람을 견디고, 가을 겨울까지 무사히 버텨주면 좋겠다. ‘이게 바로 내 나무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가 되면 좋겠다. 욕심일까?
“내가, 우리 잭과 콩나무를 그렇게 보냈어. 빨리 잘 자라면 좋겠다 싶어서, 나무에 꽂는 영양제를 이 작은 화분에 꽂았거든. 그러니까 잎사귀도 커지고 넝쿨이 막 자고 일어나면 한 뼘씩 자라 있는 거야! 대단히 잘 키우는 줄 알았어. 근데, 물 주는 걸 깜빡 잊고 캠핑 다녀왔더니 바짝 말라서 죽어버린 거야. 애가 빨리 크니까, 화분도 빨리 더 큰 것으로 갈아줘야 했는데, 그 생각을 못 했어.”
“잭과 콩나무 사진으로 봤을 때 엄청 신기했는데, 잘 키워놓고 속상하셨겠어요”
‘정말 내가 잘 키운 게 맞나?’
막상 잭과 콩나무가 말라죽었을 때는 속상함만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내 욕심에 눈이 멀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새끼는 적당히 거리감을 두고 키우는 게 맞다. 너무 끼고돌면 과잉이고, 너무 멀리하면 방임이다. 꽃을 피우면 기특한 거고, 꽃을 못 피우면 그냥 자라고 있음에 감사하면 되는 거였다. 무리해서 영양제를 꽂을 필요도 없고, 적당히 보살피고 잎사귀나 닦아 주면서 흙이 마르지 않았는지, 화분이 작지 않은지 정도만 확인해 주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 나는 잭과 콩나무의 성장 속도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그에 맞춰 자리를 내주지 못했다.
분갈이를 마친 아이들을 보면서 이번에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해 본다.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자랄 이 묘목들.
몇 달 후, ‘죽었다’라는 비보 아닌, ‘꽃이 피었다’라는 희소식을 맞이하길.
꼭 우리 집 묘목이 꽃을 틔우지 못했더라도 다른 집 나무에 앉은 꽃봉오리에 박수를 보낼 여유가 나에게 자리 잡길 바란다.
자, 6시다. 이제 우리 집 16살짜리 묘목에 물 주러 이만 퇴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