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누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현관문 앞의 술래잡기

by 강작

직장을 잡고 독립의 길을 택했다.


처음으로 ‘내 이름의 전셋집’이 생겼고 내 세탁기, 내 싱크대, 내 신발장이 생겼다. 약 15분가량, 숨이 약간 찰 정도로 언덕을 올라와야 했지만, 일부러 운동도 하는데 그 정도 경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 욕심 많은 내가 회사까지 가까워졌으니, 자연스레 야근도 많아졌다. 야근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퇴근하면 오롯이 나뿐인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엔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에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동네는 원룸촌이었는데,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임에도 저녁엔 인적이 드물었다. 다들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쉬는 건지, 아니면 아예 날짜를 넘겨서 새벽에 들어오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뉴스에서 원룸촌에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종종 보도되기도 했다. 원룸 집 벽에 누군가가 ‘○’, ‘×’ 등 자기만 아는 표식으로 혼자 사는 것을 표기해 두고 범죄의 표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대부분 여성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안다.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현관 벽을 항상 살피고, 문을 열고 들어갈 땐 “다녀왔어~”하면서 집에 들어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야근이 좀 길었던 날이었다.


인적이 드문 언덕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낯선 발자국이 따라붙었다는 걸 느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봤는데, 중년의 아저씨가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퇴근하시나 보지.’


처음엔 별생각 없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내가 우회전하면 그 구두 굽 소리도 우회전했고, 내가 좌회전하면 따라서 좌회전했다.


‘이게 뭐지? 왜 나와 보폭을 맞추는 것 같지?’


‘의심’이라는 씨앗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성장에 가속도가 붙는다. 나는 그 구두 굽 소리가 정말 나를 따라온다고 확신했다. 집으로 가는 그 15분의 시간이 15년 같았다. 머릿속에선 이미 수없이 고꾸라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비명을 지른다고 누가 나오기나 할까?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술래잡기.png *〈AI 생성 이미지 · ChatGPT〉



건물 앞에 다다랐다.


구두 굽 소리는 여전히 나를 쫓고 있었다. 서둘러 1층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년의 구두 굽 소리가 갑자기 빨라졌다. 저 소리에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몸을 안으로 던지듯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아저씨의 구두 굽 소리가 갑자기 멈춰 섰다. 닫히는 유리문을 손으로 탁, 잡아챈 것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내가 살던 3층까지 허겁지겁 뛰었다.


‘내가 왜 집으로 왔을까!’

‘내가 왜 집으로 왔을까!!’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너무 떨려서 자꾸 엉뚱한 짓을 했다. 계단을 오르는 구두 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난 터져 나올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

.

.

.


“주인집입니다~”


아! 이런 실례가 있나!


“하아... 죄송합니다아...”


나를 스윽 빗겨서 4층으로 올라가는 아저씨에게 몸을 비틀어 길을 내어주며, 긴장이 풀려버린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사과가 터져 나왔다. 유유히 올라가는 가장의 무거운 발걸음을 바라보며, ‘발소리’ 하나로 시작된 내 밑도 끝도 없는 공포심과 의심이 내내 미안하게 느껴졌다. 일순간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엔 헛웃음이 고였다.


집 계약할 때 주인아주머니는 만났지만, 주인아저씨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주인집 아저씨를 무자비하게 오해한 이 순간까지 아저씨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거운 구둣발 소리가 4층 현관문을 열고 사라질 때쯤, 나는 6개월 만에 ‘주인아저씨’의 존재를 승인했다.


내 곁에 누가 사는지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한 번 해보지 않았으면서, 나는 언제든 그들이 내 일상을 무너뜨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피곤하지만, 거리를 두고 적당히 고립되는 건 효율적이라고 믿었다.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소리를 오독(誤讀)하며 살아간다.

예전과 사는 동네나 퇴근 시간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오늘도 내 퇴근길엔 많은 발소리가 따라붙는다. 그중에 유독 하나의 발소리만 남더라도, 예전처럼 심장이 크게 요동치진 않는다. 잠시 운동화 끈을 묶는 척, 멈춰 앉아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편의점을 들러 아들이 먹을 간식을 사기도 한다. 이건 오독했을지언정 오해는 하지 않겠다는 나의 신호이자, 당신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다.







작가의 이전글이쑤시개 같은 라일락, 꽃을 피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