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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Aug 17. 2021

게스트하우스 #006


내가 처음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던 건 20대 초반 내일로 여행 중이었다. 나의 두 번째 여행이었다. 그전에 여행은 단 한번, 홀로 경주를 여행한 것뿐이었다. 


그때 나는 매주 주말에 잠깐씩 편의점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여행 느낌을 낼 수 있었던 건 경주가 제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알맞은 숙소는 바로 찜질방이었다. 그래서 경주에서 나의 밤은 찜질방이었다. 20살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숙박업소는 별로 없었다. 호텔이나 모텔은 아직 어린 나에게 비쌌고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찜질방이었다. 그때의 나는 술을 즐기지도 않았다.


내일로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했었다. 그때 머물렀던 숙소 중 하나가 부산에서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친구들이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긴 했지만 2팀이 함께 숙소를 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벽 없는 펜션 느낌이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저쪽은 저쪽끼리 여행 왔기에 우연히 마주치면 목례 정도가 끝이었다. 하루뿐이었지만.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라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 후 친구와 함께 간 유럽에서 우리는 여행에서의 모든 날을 게스트하우스 혹은 한인민박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나의 처음 게스트하우스의 제대로 된 경험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도미토리에 모여서 각자 하루를 보내고 잠을 함께 자는 것.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해외였기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모이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했다. 미국, 이탈리아, 한국, 프랑스 등등...


현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남녀 구분이 없이 다 같이 모여서 한마디라도 서로에게 건네주는 그런 재밌는 분위기가 있었다. "오늘은 어땠어?", "어디 다녀왔어?", "앞으로 어딜 갈 예정이야?", "국적이 뭐야?" 같은 뻔하고 일상적인 대사라도 건네는 것에 차이는 있었다.


한인민박에서는 아침 혹은 저녁을 주었다. 그 시간대는 여행 중인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마음이 조금 더 맞으면 술을 함께 마시러 떠나기도 했다. 외국이니 맥주 혹은 와인이었다. 때때로 게스트하우스 내에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이 되는 곳. 평소에는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섞이는 분위기가 좋았다. 연구하는 사람들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고, 공무원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공무원들이, 교사들은 주변에 교사들이 많기 마련이다. 개인의 노력이 없다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는 그런 주변을 조금 환기시켜줄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된다.


그래서 젊은 내게 게스트하우스는 성지였다. 누군가 내게 무엇을 하며 살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라고 할 정도였다. 내가 익숙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 직업으로 느껴졌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 때가 있었다. 그 여행지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만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2박 3일 혹은 3박 4일 정도 머무른다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었다. 그 정도 시간이라면 그리 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10일을 머물렀다. 나의 원래 계획은 4일이었지만 다음 여행지를 포기하고 그곳에서 10일간 머물렀다. 


다 좋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오래 머무른다는 것은 너무 쓸쓸한 일이었다. 내가 오래 머물렀던 것은 함께 그 여행지를 즐겼던 사람들이 거기 오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만큼 오래 있지는 않았다. 일정 시간이 지날수록 머무르는 사람들은 계속 환기되었다. 한 여행지에 오래 있다는 것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쓸쓸해졌다. 친한 사람들은 떠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이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같이 한 사람들은 없어졌고, 익숙해졌고, 새로운 사람들은 순간만 흥미가 있었고 점점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보거나 만나서 생기는 즐거움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떠나는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는 내가 여행 갈 때 사용하는 좋은 장소로 남겨두는 게 나에게도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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