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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Aug 20. 2021

꿈 #007

 


 나는 어디론가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다. 장소는 계속 바뀌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그건 내가 느끼는 것이었고 또 다른 나는 아니다. 난생처음 보는 곳을 집이라고 부르며 안정감을 가지고, 익숙하지 않은 익숙한 곳을 계속 돌아다니는데 이상하게도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곳의 나는 현실의 내가 아니라 그곳의 주민이다. 새로운 사건이 계속 벌어져도 일상인 양 평화롭다. 그곳의 주민이니까. 때때로 몇 년 전 헤어진 사람이 나와서 나랑 친한 듯 이야기하고, 전 세계적으로 지진이 난 듯 고속도로가 갑자기 무너져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의 나는 꿈이 깬 후에야 인지할 수 있다. 방금까지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무엇이 다른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방금까지 만나고 대화했던 사람들이 다 꿈 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해할 수 없음으로 바뀐다. 혼란스럽지만 한순간이다. 꿈은 휘발성이 커서 대부분 일어나면 잊어버린다. 꿈에서 깨서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다 상실해버린다. 그저 감정과 느낌만 남아있을 뿐. 그러면서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만 중얼거릴 뿐이다. 


 나는 어렸을 때, 한 몸에 두 명이 산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나를 A, 또 다른 나를 B로 말한다면 A가 활동하는 것을 B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A가 꾸는 꿈은 B의 생활일 것이다.라고. 그래서 나는 나의 꿈이 경험을 더 상승시켜 준다고 믿었다. B의 삶은 A의 현실이 아니니까 B가 어떤 행동을 하던 A와는 상관이 없었다. B가 내리는 결정은 결과를 도출하기 마련이고 그건 A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니 A의 삶은 남들보다 2배가량 더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곧 사라졌다. 그전까지 B의 결정은 A가 생각해도 꽤 합리적이고 있을 만한 결정을 내렸다. A와 B는 절반은 사람이기에 정확히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결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이해는 가고 납득이 되는 결정과 상황들이 꽤 오랜 기간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B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계속 내리던 날이 있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친구가 잠시 일하는 곳에 오니 다 내팽개치고 나가서 놀고, 사장님도 별말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괴리감을 느꼈다. 한 번 이런 생각이 들자 꿈은 더 이상 B의 생활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B는 사라지고 꿈은 꿈일 뿐이었다.


그래도 아직 꿈을 자주 꾼다. 하지만 점점 장소는 고착화되고 있다. 나오는 장소들은 꽤 자주 나온다. 자주 나오는 장소들이 큰 틀은 같고 조금씩 새로워지고는 있다. 몇몇 장소들은 꿈에서만 나오는 장소들이라 현실에서 갈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쉽긴 했다.  새로운 장소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꾸는 건 이제 큰 의미를 둘 이유가 없었다. 꿈은 꿈으로 보이게 되었다. 어떤 꿈은 허무맹랑했고 어떤 꿈은 있을 법했다. 귀신이 나오거나 무언가 스펙터클한 장면은 그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었다. 일어나면 잠깐의 여운이 남았다. 때때로 있을법하고 예전엔 알았지만 지금은 모를 사람들이 나오는 꿈을 꿀 때는 과거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잠시 추억에 잠기게 해 주었다. 일어나서 여유가 있을 경우에만.


꿈은 예전처럼 신비로운 체험이 아니라 그냥 조금의 심심풀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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