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SR Aug 28. 2021

싫은 나의 동네

자살이 허기진 밤 #009

 동네.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좋아한다. 수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원을, 대구 사는 사람들은 대구를. 다 각자 살고 있는 곳을 좋아하고 애정을 가진다. 몇 년 간 살아온 곳이어도 그렇지만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런 애정은 더 커지는 것 같다. 아버지도 아직도 살아온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우연히 알게 된 아는 형이 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던 형이었는데 그 형은 자지가 살던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이사 갈 생각도 한 번도 안 하고 30살이 넘도록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어서 맛집이나 어디서 노는 게 좋은지 동네의 모든 것을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같이 게임을 할 때도 아이디 같은 것이 다 사는 동네명이 녹아져 있었다. 한때 유행했던 'xx동 제라드' 이런 것처럼 말이지. 우리들은 장난으로 동네의 지역 유지니 국회에 나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형을 볼 때면 참 신기했다.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다만 지금은 결혼해서 원래 살았던 곳과 조금 멀어져 버렸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았다. 내가 살았던 도시 중에서 가장 오래 산 도시인 셈이다. 그 전 두 군데 정도 있었지만 하나는 기억이 나기도 전에 이사를 갔기에 그곳에서 살았던 기억은 없다. 그다음에 살았던 곳은 경기도였다. 경기도에서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중학생부터 살았으니 인생에서 절반 이상을 산 셈이었다. 아 군대에서의 2년은 빼고.


 그래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은 고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만큼 추억을 쌓은 곳도 없었으니까. 좋은 점부터 이야기해볼까? 우리 동네만큼 좋은 곳도 많이 없다. 우선 교통이 편해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다면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기에 꽤 쉬운 동네였다. 또 주변에 괜찮은 산책로들이 많았다. 그리고 밝았다. 한때 새벽에 걷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나 좋은 동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생활들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심야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새벽 2, 3시에 영화가 끝나고 새벽 공기 속에서 내용을 곱씹으며 집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을 너무 사랑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단점이 존재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주변이 학원가라는 점이었다. 학원가는 고등학생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리고 재수생들 혹은 대학교 1, 2학년들이 많았다. 이 점이 이 동네를 싫어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첫 번째로, PC방을 이용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PC방 가는 걸 많이 안 좋아하지만 한창 친구들과 많이 갈 때에는 주변 PC방이 항상 가득 차 있었다. 두 번째로 카페를 갈 수 없었다. 좋아하는 자리들은 이미 다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예전에는 동네 카페를 갔다가 코로나를 버티지 못해 없어지고, 최근에는 스타벅스를 주로 이용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투덜거림이었다.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적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지금부터다.


 세 번째로, 개념이 없는 학생들을 너무 많이 봤다. 카페에 자리를 맡아놓고 점심 혹은 저녁을 먹고 오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프랜차이즈 카페일수록 이런 현상을 크게 터치하지는 않지만 도의적으로 너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카페에 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뺏기고 싶진 않지만 밖에서 밥을 먹고 싶어서 하는 것일 테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카페에서 의자에 발을 올리고 있는 것도 보기 좋진 않다.


 네 번째로, 자주 가는 동네 카페가 있었다. 커피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한적한 곳에 있어 자주 방문하는 곳이었다. 코로나가 시작하기 전, 영업시간이 12시까지여서 자주 갔던 곳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과 재수생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발을 끊게 되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입구에서 항상 담배를 폈고 침을 뱉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려면 항상 수많은 담배꽁초와 담배연기와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양아치들을 헤집고 카페에 들어가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카페를 가지 않게 되었다. 때때로 밤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무리가 지나가기도 했다.


 다섯 번째로, 교통체증이다. 특히 9시부터 11시까지 차가 너무 막힌다. 주된 이유는 10시에 맞춰(지금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끝나는 자녀들을 데려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차량 때문이다. 동네는 안 그래도 주차공간이 협소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대기하는 차들은 도로들을 점거하고 있다. 2차선 도로의 절반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밤에 편의점을 가거나 잠시 동네를 돌아다닐 때 경적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도로가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배달 가는 오토바이와 택시까지 참전한다면 지옥이다. 최악이다. 정말로 최악이다. 게다가 고등학생들, 대학생들이 가끔씩 오토바이를 타고 소리를 지르면서 질주하거나, 시끄럽게  엔진 소리가 나도록 개조하여 새벽길을 달릴 때마다 창문 밖으로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정말 컨디션이 최악으로 치닫는다.


 마지막으로, 이건 모든 도시들의 문제가 되었다고 보는데 바로 전동 킥보드다. 나는 이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다. 성인들도 많이 타고 다니지만 여기는 중, 고등학생들도 많이 타고 다닌다. 운전면허를 검사한다는데 비둘기를 찍어도 통과된다는 뉴스 기사를 본 이후로 글렀구나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혼자 타지 않는다. 세명까지도 자주 타고 다닌다. 우선 이 전동 킥보드는 어디서 타도 민폐가 된다. 인도로 타면 충분히 그것으로도 위협이 된다. 그렇다고 도로로 간다면 오늘 죽고 싶다는 신호로 보인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고가 충분히 날 만한데 왜 그럴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탄 후 아무 곳이나 던져놓는다. 특히 인도에 던져놓는 경우가 많은데 비 오는 날에 이런 경우가 많아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킥보드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도 가끔씩 보았다.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싫어한다. 불편해도 감성이 있는 도시가 있지만 여기는 편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 도시였다. 익숙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세련되었지만 정이가 진 않는다. 아직 도시에 머물러야 되기 때문에 있지만 가능하다면 떠나고 싶은 동네다. 나는 원래 싫어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가끔씩은 나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좋아해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