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10
하루, 친구들끼리 모여 함께 자기로 했다. 밤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근처 피시방을 찾아 들어갔다. 고등학생들이 많아 오렌지, 럭셔리 혹은 무슨 숲길 같은 이름들... 피시방이 많은 동네였다. 우리가 주로 했던 게임은 같이 할 수 있는 피파2나 서든어택, 스타 같은 게임들이었다.
게임 말고도 당구에도 맛을 들일 때였다. 우르르 몰려가 자리 잡고 4구를 주문했다. 함께 주는 탄산을 마시며 하다 보면 100을 치는데도 1시간 안에 다 끝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당구대를 처음 잡아봐서 그런 거 같았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내기하며 웃으면서 게임을 했다.
마지막 외부 일정은 치킨집이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곳은 돈치킨이었다. 사장님이 서비스도 많이 주시고 치킨이 엄청 맛있어서 모임 장소는 항상 여기었다. 콜라랑 사이다를 마시며 축구를 봤던 장소였다. 대여섯 명이서 모여 앉아 사진도 찍고 오늘을 기념했다.
오늘 머물 친구네로 갔다. 적당히 잘 준비를 했지만 다들 쉽게 자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12시가 가까워졌다. 텔레비전을 켰다. 어떤 아저씨들 아줌마들과 스님이 모였다. 10초가 지나고 제야의 종이 울렸다. 우리는 다 같이 모여 앉아 종소리를 들었다.
종소리가 끝나고 한 친구가 편의점에 간다고 했다. 마침 마실 것도 다 떨어져 다 같이 편의점에 갔다. 그곳에서 편의점 가자고 한 친구가 산 건 담배였다. 편의점에서 나와 불을 붙여서 피기 시작했다. 그게 그 친구의
이제 우리는 20살이었다. 우리를 제어하고 있는 것들이 다 사라졌다. 책임이 커졌다는 생각보다는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더 컸다. 그리고 머리를 짧게 잘랐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머리가 긴 편이었다. 변명하자면 머리가 직모라 길면 감당할 수 없어 파마를 하고 다녔다. 중학생 때는 샤기컷이 유행했었고 고등학생 때도 다르지 않았다. 아직 두발 단속이 심할 때였다. 특히 남고에서는 더 심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첫 주, 학생부에서는 단속에 걸린 애들의 옆과 뒷 머리를 가위로 거칠게 자른 후 미용실 가서 거기에 맞춰 다듬으라고 했었다. 하지만 단속이 심해지는 만큼 머리를 길러 끝이 갈라지는 것과 옆머리가 귀를 덮는 것이 나름의 훈장이었다. 그래서 단속을 피하기 위해 늘 아침 일찍 등교했다.
이처럼 긴 머리를 고수했던 나도 20살이 되자 머리를 짧게 잘랐다. 시원하게 귀를 파고, 뒷머리도 올려쳤다. 두발 단속이라는 강한 규칙에 거부했는데 사라지니 거추장스러웠다.
나는 이제 술도 마실 수 있고, 피시방도 하루 종일 있을 수 있고, 담배도 피울 수 있고, 학교도 내가 가고 싶을 때만 간다. 마음의 부담감 없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었다. 나는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일했고 평일에는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1학기를 보냈다. 그리고 갑자기, 정말 갑자기 다 허무하고 부질없어졌다.
그래서 2학기에는 학교에 잘 나가지 않았다. 학교를 나가더라도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고 마침, 타이밍 좋게 사람들을 만나면 술을 마시거나 그 순간이 없다면 그냥 주변을 돌아다녔다. 학과 생활도 하지 않고 동아리 생활도 내팽겨둔 채. 그때의 나는 왜 갑자기 무료해졌을까. 왜 질려했을까.
얼마 남지 않은 군대 때문에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봐야 없어질 인연이라 그랬던 걸까. 그냥 내 성향이 그랬던 걸까. 그래서 20살을 날려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억눌려있던, 선천적인 우울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것. 어차피 사라져 버릴 시기라는 것. 그런 류의 곧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깔고 지냈었다. 그게 나의 20대의 감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