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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 휩싸인 나의 정신과 일기 #4

자살이 허기진 밤 #042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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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로 간단한 프로젝트에 일주일정도 투입되었다. 또한, 2달 뒤 진급 대상자가 되었다는 공지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긴 설 연휴가 있었고, 그중 며칠 동안을 친구들과 한라산 백록담을 보러 제주도에 방문하였다. 평화롭다고 하면 평화로운 일정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바로 직전 정신과 상담에서 나는 "괜찮아진 것 같다"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아니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을 해보니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일을 하게 된 동료들은 나보다 경력은 짧지만 적극적이고 일도 잘했다. 나는 점차 위축되어 내가 회사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이 업계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가 실무단에서 마무리된 후, 리더나 한 번씩 검토 및 수정사항을 체크해 주었을 때 완전히 달라진 결과물에 대단하다는 생각과, 나는 절대 저렇게 못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나는 이 일과 적성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 내가 진급대상자가 되었다. 기쁨보다는 의아했다. 뭐 하나 제대로 보여준 게 없는 나인 것 같은데 내가 왜?라는 생각에 오히려 자괴감이 들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금세 나를 제칠 듯이 일하면서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었고, 내 바로 위 사수들은 손에 닿을 수 없을 만큼 까마득했다. 그 갭을 줄이려는 노력과 의욕도 내겐 없었다. 그냥 자책뿐. 그러니 회식이나 기타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후회가 늘었다. 진급대상자인데도 퇴사생각이 강하게 드는 건 뭐랄까. 엄청 복잡한 기분이었다.


설 연휴는 길었지만, 나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한 번인가 두 번쯤 카페 가서 커피 마신 게 전부였다. 친구가 제주도에 가자고 해서 약속을 잡고, 금요일 퇴근 이후 일요일까지, 3일간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일요일에 한라산 등반이었다. 여행 후, 너무나도 나와 다른 결 때문에 이 친구들과 연락을 점차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들게 했다. 이제 고등학교 친구들하고도 나눌 것이 없구나. 과거는 이미 많이 나누어버렸고, 현재 관심사도 겹치는 것이 없었다. 미팅과 소개팅, 주식, 재테크를 이야기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축구나 게임과 같은 아직도 아이 같은 취미들이었다. 나와 그들의 말은 공허 속에 외침이었다. 서로에게 닿지 않았다. 그냥 하품 한번 할 뿐. 태도도 문제였다. 친구라서 선을 너무 많이 넘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이상 기후 속, 북극곰이었다. 내가 서 있을 곳은 녹고 녹아 이제 발 디딜 틈이 없구나 라는 생각밖엔 없었다. 또한 궁금했다. 어디까지 얼음이 줄어들까.


밤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초저녁에 잠이 쏟아지듯 올 때, 잠에 든다면 12 즈음에 일어나게 돼, 그다음 날은 지옥이었다. 하지만 그때 자지 못했다면 나는 최소 4시가 지난 후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긴 밤동안 우울해했다. 왜 나는 이렇지? 왜 이럴까?라는 생각에. 이게 너무 심해져서 6시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울음이 나올 뻔할 다음날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늘 병원 방문 전 자가진단링크를 통해 나를 체크하는데, 아직 우울과 불안이 높았다.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이러는 것을 보며, 약 효과가 더딘 편이라고 했고, 다른 약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나도 들었다. 우울증에 관한 약은 꾸준하게 오래 챙겨 먹어야 효과가 차츰 나오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느낌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리고 약을 먹어서 우울증이 좋아져 봤자 내 삶은 그대로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늘 드는 생각은 그냥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1~2년쯤 외국을 돌아다니다가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온라인상에서는 익명이 편하듯이. 한국에서의 만남보다 외국에서 만나는 휘발성 강한 인연이 오히려 마음은 더 편했다.


정신과 의사는 언젠가 이런 우울함이 가실 텐데 그때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만약 휴식이 필요하다면 진단서를 써줄 테니 병가나 휴직계를 내는 방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봤을 때,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기업에서 병가나 휴직계를 낼 수 없었다. 차라리 퇴사를 했지.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내게 더 압박감이 들 것 같았다.


다음 상담은 2주 뒤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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