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43
정규직으로 일을 했을 때, 두 번 퇴사를 했고, 지금은 세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3년, 5년, 7년 혹은 3년, 6년, 9년 차에 퇴사 욕구가 찾아온다고들 한다. 이를 잘 넘겨야 한다고 했다. 보통 경력을 인정받는 연차가 3년 차부터이기 때문이다. 이직을 위해서라도 참고 버티는 기간은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그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모두 퇴사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제의를 받아 입사했던, 첫 번째 회사는 비교적 편한 곳이었다. 특정 기간을 제외하면 야근도 많지 않았다. 특성상 당직을 할 일이 있었고, 당직 시 9~10시에 퇴근해야 했지만 그래도 당직비는 챙겨주었다. 간혹 토요일에도 일해야 했지만,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어 기회가 되면 지원하곤 했다. 하지만 여기서 오래 일하면 내가 발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변화가 없었으나 그게 나를 정체시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다. 다행히도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좋은 사람들이어서 지금도 가끔씩 만나며 안부를 주고받는다. 나는 여기서는 막내였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퇴사 결심이 쉬웠다. 대표와 면담 당시 약속했던 연봉 협상과 다른 계약서를 건네며, 몇 차례 계약서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결국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일을 하며 외로운 점도 있었다. 한 명당 여러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어서, 팀이지만 팀에 속하지 않았다. 야근할 일이 있으면 혼자 했고, 의미 없는 응원만 해주었다. 나는 업무를 분배해 주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 회사에서 배울 것은 다 배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왜 이 회사를 떠나려 하는지, 그리고 경험을 통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 두었다. 이 감정은 오직 퇴사 직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퇴사한 이후, 신입들도 대거 퇴사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들 취업도 다시 잘했다고 들었다. ‘최소 3년은 버텨야 한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구나 싶었다.
두 회사를 거쳐, 지금 다니는 회사는 만족스럽다. 재택근무도 있어 나름 여유로웠고, 몇몇 복지들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만족스러웠다. 내가 원하는 워라밸이 좋은 회사였다. 만족스러웠지만, 입사 이후 상황이 많이 변했다. 오래 있었던 직원들이 퇴사하고 새로 입사하여 달라졌고, 기존 있었던 사람들도 바뀐 느낌이었다. 예전처럼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분위기도 달라졌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게는 중요한 사항 중 하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동시에 내가 여기서 더 이상 있을 이유를 점차 느끼지 못했다. 나는 타인의 태도를 잘 살피는 편인데, 점점 회사에서 내 존재가 필요 없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가 나를 필요하지 않는데 내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회사와는 별개로 이 일이 나의 적성과 맞지 않았다. 주말에 일을 하거나 휴가에서도 계속 일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매일 엑셀만, 수치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짜증 났다. 회사가 크다면, 실무와 이를 관리하는 업무로 이어지지만 여기서는 모두가 영업이 필요했다.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진급 대상이 되는 것이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만년 사원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야 나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회사 생활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회사에서의 나와 평상시에서의 내가 다른 것도 큰 이유였다. 점점 나 자신이 우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재밌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늘 끝은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차라리 사라지는 게 맞아 보였다. 우울증도 하나의 이유였다. 잘난 사람들도 많아 열등감이 느껴졌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맞았다. 나는 이 일이 싫었기에 즐기지 못했다.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발전을 할 수 없었다. 노력을 하지 않기에.
늘 그렇듯이 퇴사를 생각하고 있고, 퇴사를 한다면 당분간은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무서운 건 그 기간 이후 내가 회사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을 때,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나와 적성에 맞는 새로운 일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나는 행복할 수 있을지. 모든 게 다 두려웠다. 대답은 부정적이지만, 계속해서 이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