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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

자살이 허기진 밤 #046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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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태해진다고 생각할 때 밖으로 나간다. 집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장비가 많이 갖춰져 있으나 온전히 작업만을 생각할 공간이 되지 않는다. 나의 개인적인 삶의 물건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작업에 대한 생각, 생활에 대한 생각 그리고 시시콜콜한 생각들이 겹쳐 결국 나는 내가 계획한 일을 하지 못한다. 함께 사는 동거인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만 내가 동거인을 신경 쓰지 않을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방 하나를 작업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만 너무 좁다. 방 하나도 내가 온전히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집중력은 계속 감소한다. 즉,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공간이어서 다른 생각이 침투할 여지가 너무 많다.


그럴 때 나는 노트북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선다. 내가 할 작업들은 보통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동네 카페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선호하는 카페리스트는 있다. 내가 작업할 때 주변 신경을 안 써도 되고, 필요로 하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 곳을 선호한다. 아르바이트생이 개개인을 신경 안 써도 될 만한 공간 이상인 곳 혹은 작업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곳. 콘센트가 있으면 좋다. 와이파이가 잘 되어 있거나, 화장실이 청결한 곳도 좋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오픈되어 있는 곳이라면 더 좋다. 이 정도면 최상의 환경이다.


카페는 사람들이 많아 작업 말고는 다른 것을 할 수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혼자 있는 느낌을 주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이런 공간은 나는 사랑한다. 내가 온전히 생산적인 것을 할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물론 장비는 부족하지만 그건 내가 돈이 부족해서다. 돈만 많았다면 맥북프로나 나스 등을 활용하여 작업하고 싶지만, 너무 장비를 탐하는 성격은 조금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자제하게 된다. 아직 나의 작업들이 내게 돈을 벌어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새로운 카페들을 가보기도 한다. 콘센트가 없다면 노트북, 핸드폰 배터리를 채워 가면 되고, 와이파이가 없다면 핫스팟을 활용하면 된다. 화장실은 보통 존재한다고 믿고 간다. 그럼 새로운 환경에 신선함을 느끼고 간혹 영감도 느끼는 편이다. 이는 복불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저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대부분 사람 때문이다. 이 근처에는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편인데 그래서 유명한 카페는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들은 자리를 잡아 놓는 학생들이 많다. 점심, 저녁을 먹을 때도 자리를 잡아 놓고 가버리니 나는 그런 공간과 자리를 찾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몹시 불편하다. 구석에 있는 카페들도 이런 곳이 많은데 학생들이 많다 보니 20대 초반 남자들도 많은 편이다. 보통은 대학 가면 다른 지역 혹은 대학 근처로 이사 가는 경우가 많다. 내 친구들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를 제외하고 다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재수를 하거나 아직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 20대 초반이 특히 그러는데 카페나 가게 앞에서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포기한 카페들이 많았다.


소리도 컸다. 나는 카페는 떠들고 편한 분위기가 우선이라 생각한다. 집중하고 싶다면 이어폰을 착용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건 일반적인 소음일 때 가능하다. 아예 소리를 지르거나 찢어질 듯 웃거나 하면 대부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보통 그런 애들은 시선 또한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몇 번 지속되다 보면 아무리 내가 편한 환경이다 해도 다시는 안 가는 카페로 인지되고 만다. 그렇게 이 근처에서 포기한 카페가 많았다.


나는 왠지 한번 신경 쓰게 되면 불편한 걸 쉽게 참을 수가 없다. 물론 이건 내 기분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꼴 보기가 싫다는 말과 동일하다. 시끄러운 오토바이로 속력을 내며 거리를 다니는 것을 보면 한번 치어봐야 정신 차리지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생각일 뿐 굳이 내가 뭐라고 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주인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도 남에게 피해 주는 면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알 수 없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불편을 주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다. 단지 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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