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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인간

자살이 허기진 밤 #052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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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함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운 사람이다. 그러기에 나는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나보다 다 나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니까.

... 남들 보는 앞에서는.


의견을 표출할 때는 늘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간단하게 전자기기를 선택할 때를 예로 들어보자면, 나는 이런 스펙을 선호하는데 A는 이게 맘에 안 들어서 싫어. 이런 판단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치가 들어가는 일에는 세상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나오기 마련. 그리고 그 안에서 때때로 '옳음'이란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고 의견 다른 타인에 대한 껄끄러움만 남을 수 있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합리적 이유. 이 점은 개개인을 고고하게 만들지만 실천할 수 있을 만한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의를 부르짖는 게 아니라 정의를 실천해야 그 사람이 고고해진다. 나도 한때 그런 걸 꿈꿨다. 하지만 나는 실천에 있어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입만 산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뿐만 아니라 남들도 납득할 만한 그런 공정한 생각 또한 예전에는 나 스스로가 얼마만큼 포용 가능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많은 연예인들이 음주운전을 한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한 사람들을 증오해야 하지만 그 사람의 매력에 따라 한 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즉 나는 줏대가 없는 '한낱 인간'이 되어버린다.


생각해 보았다. 그런 공정한 마음속 올바름이 나를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들어줄까 하는 그런 생각.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중요한 일일까?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 나와 나를 인정하는 나와의 치열함에서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젊음은 그런 고민을 하는 시기인 걸까?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일련의 고민과 자기 합리화로 마음이 단련된 사람들은 담금질되어 단단해진 스스로의 강철로 된 껍질을 생성해 낸 것이고, 남들은 그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것이 가장 편안한 상태의 나로 변한 것 일 수도 있다. '꼰대'라는 그런 비하적인 말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가장 편안한 상태의 자기 합리화일 수 있다.


아직 단련되지 않는 나지만 점차 바깥의 시선에서 나의 시선으로, 시선의 방향을 돌린다. 가치가 들어간 생각은 표출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적당히 감춘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잘못이 확대되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심각한 잘못도 사소한 것처럼 넘기면 되는 것이다. 나만 간직하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 될 건 없으니까. 공정함이란 자기 학대였고, 간직한 생각은 자유인 동시에 외로움이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나의 자유만 생각하다가는 결국 나를 인정해 주는 건 나 하나뿐이 될지도 모른다는, 체념적인 고독과 언젠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니까. 나라는 심연에 갇히게 된다면 그 속에서 천천히 죽는 줄도 모르고 익사하게 되니까. 죽기 전이 편안한 법.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산다는 건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무척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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