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득

자살이 허기진 밤 #053

by GSR
f18fd994-63ea-4c28-8e69-6b86ab476fcc.png


'문득'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섭다. 삶에서 별로 없는 여유의 틈에서 툭 튀어나오는 문득. 평화를 깨는 문득. 나를 다른 방향으로, 깊숙한 심해로 잡아 끄는 문득. 흰빛이었다가, 푸른빛이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주면이 모두 어둠으로 물들어 있는 문득. 사방팔방이 모두 심해로 깊숙이 가는 느낌. 하늘도 바닥도 우측, 좌측 모두 심해. 다섯 발자국의 섬 그 위에 나.


어찌할 수 없음이란, 이런 것일까? 어찌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다면 문득은 사랑과 같은 걸까? 아니다. 문득은 아련과 가능성, 사랑은 고통과 후회. 결국 어떠한 시간을 충분히 견딘 사람들만이 문득이라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버텨온 나에 대한 훈장 같은 문득.


우리는 문득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삶은 문득을 통해 무엇을 주려 하는가. 삶을 충실히 보낸 사람들에게는 되돌아 봄을, 후회로 점철된 사람들에게는 더 아픈 상처를 주려고 하는 것일까? 안된다. 때때로 죽음처럼, 모두가 공평하게 받는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문득이라는 순간은 아픈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 내가 너무 슬프니까.


하지만 나는 문득을 통해 가능성이 아닌 너를 본다. 의식적으로 나는 너를 배제해 온다. 문득은 무의식의 세계, 꿈과 같은 순간이고 나는 무기력하게도 저항할 수 없다. 내 삶에서 너는 재해가 되어버렸다. 문득이 가져다준 생각에서의 너는 과연 너일까? 증오로 재구성된 너일까?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현실에서는 나는 너를 만나지 못할 것이고 어떻게 상상하든 내가 너라고 인지하는 순간 너인 것이다. 증오하는 너.


사랑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지만 증오는 평생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너를 싫어한다. 종이에 글을 쓰고 지우개로 지운다. 흑연은 사라졌지만 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모든 새김과 삭제에는 흔적이 남고 그건 나에게는 흉터. 비가 오면 아리고, 뛰려고 하면 불편한 그런 흔적. 함부로 지울 수도 없다. 그럼 내가 죽으니까.


모든 경험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이 있다. 너 같은. 미래보다 과거를 양분 삼아 살아오는 나에게 너는 큰 독이었고, 혈관에 새겨진 문득은, 때때로 중독에 이르게 한다. 내게 문득은 그런 독성을 지니고 있다.


삶에서 나와 가장 오래 머무를 친구는 상실. 달콤한 그 친구는 내게서 하나씩 앗아간다. 잠시 그 친구가 자리를 비울 때 다가오는 문득. 문득을 긍정으로 바꾸기에 나는 아직 젊고, 후회를 느끼지 않기엔 아직 상처가 아리다. 웃으면 눈물이 나는 문득. 죽음을 긍정하게 되는 문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낱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