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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다는 건

자살이 허기진 밤 #059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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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노래를 듣는 이유는 노래가 가진 음률과 가사가 감정의 어느 끝자락에 살며시 닿아 조용한 진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진동은 기쁨일 수도, 슬픔일 수도 있다. 즐거움과 우울 그 넓은 스펠트럼에서 평소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감정의 끝자락에도 다다르곤 한다. 때때로 이 진동이 강해진다면, 우리는 모든 감각을 잃고 오직 청각과 상상만으로 그 감정을 음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사람들마다 노래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늘 느낌이 좋은 노래를 찾는다. 그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정, 그 순간의 공기와 나의 결이 비슷할 때, 나는 노래 안으로 빠르게 스며든다. 아무 생각 없이 밤길을 걷다가,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투두둑 거리는 창을 바라보고 있거나,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거나 할 때.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곧 나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인지시켜주어 감성의 일치가 더 높아지는 때이다. 그래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감성적인 노래가 대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어떤 노래에 깊이 빠지게 되면 그 가수의 다른 노래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 기대를 저버리는 상황이 더 많다. 안타깝게도 가수가 불렀던 노래와 비슷한 감성을 기대하며 다른 노래들을 들어보면 나의 생각과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없을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한 가수의 노래가 3곡 이상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때때로 가수의 결과 감성의 결이 고요하게 이어질 때, 그 가수는 내가 사랑하는 가수가 된다. 검정치마, 혁오, 클래지콰이 등과 같이.


사람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지만, 음악은 그중 강력한 매개체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나, 그 시절의 철없음, 그 시절의 그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L.O.V.E'를 들으면 친구들과 함께 와우를 즐겼던 내가, 인순이의 '친구여'를 들으면 수학여행을 가던 대형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신나 떠들던 내가 생각난다.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들으면 이 노래는 너무 슬퍼서 듣기 정말 싫다는 네가 생각나고, Gilbert O'Sullivan의 'Alone Again'을 들으면 이 노래는 점점 빠져든다는 또 다른 네가 생각난다.


한때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에 빠질만한 노래를 공유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의 감성은 너에게 통할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생각은 대부분 무너져 내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제는 나 혼자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정말 이러한 마음을 숨길 수 없을 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툭 던져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취향은 개인적인 것이라, 나의 취향이 눈을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반응 앞에 놓일 때가 무섭다. 공감을 받고 함께 공유하고 싶지만, 어쩌면 온라인상에서는 마음 편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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